[한상춘의 '국제경제읽기'] 비트코인 투기 광풍과 문재인 정부 '화폐개혁'

입력 2017-05-28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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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 각국 화폐개혁 촉매제
상황 논리에 밀려 추진하면 실패



비트코인 투기 광풍이 불고 있다. 공식 화폐도 아닌 비트코인 가격이 이달 들어서만 100% 이상 치솟았다. 한 뿌리 가격이 중산층 1년 생활비의 열 배를 웃도는 수준까지 올랐던 17세기 네덜란드 튤립 투기를 연상케 한다. 공급 제한과 온라인 거래 활성화로 가격이 더 뛸 것이라는 기대도 쉽게 누그러지기 힘든 상황이다.

각국 국민의 화폐 생활도 급변하고 있다. 가장 큰 변화는 현금 없는 사회가 닥치고 있다는 점이다. 오히려 공식 화폐인 법화(法貨)를 갖고 있으면 부패와 탈세 혐의로 의심받는, 즉 케네스 로코프 하버드대 교수가 주장한 ‘현금의 저주(curse of cash)’ 단계까지 이르고 있다.

화폐개혁 필요성이 증대되고 논의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실제 추진한 국가도 의외로 많다. 미국은 20달러, 50달러, 100달러짜리 지폐를 새롭게 도안해 2013년 발행했다. 이듬해 일본은 20년 만에 10000엔, 5000엔, 1000엔짜리 신권을 선보인 데 이어 2015년에는 중국, 작년 말에는 인도네시아가 신권을 내놓았다.

화폐 거래 단위를 축소하는 리디노미네이션을 단행한 나라도 있다. 터키, 모잠비크, 북한 등이 대표적이다. 작년 11월 인도는 전체 화폐 유통 물량의 86%를 차지하는 구권 500루피, 1000루피를 신권 500루피, 2000루피로 교체하는 변형된 화폐개혁 조치를 발표했다. 같은 시점에 베네수엘라도 화폐개혁을 했다.

고액권 발행을 중단하거나 폐지해야 한다는 논쟁도 갈수록 거세지는 추세다. 2000년 캐나다, 2014년 싱가포르에 이어 작년 5월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최고 권종인 500유로 발행을 2018년 말까지 한시적으로 중단했다. 미국도 래리 서머스 전 재무장관을 중심으로 최고 권종인 100달러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되고 있다.

세 가지 형태의 화폐개혁에서 공통적인 특징은 고액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이다. 이유는 분명하다. 국민의 화폐 생활에서 비트코인과 같은 대안화폐 비중이 높아짐에 따라 고액권일수록 화폐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부패와 뇌물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고액권 회수율을 보면 그대로 드러난다. 미국에서 100달러짜리 회수율은 2013년 82%대에서 지난해 75%대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 500유로는 102%대에서 85%대로 급락했다. 우리나라는 올해 1분기 5만원권 회수율이 60%대까지 높아졌지만 선진국에 비해서는 턱없이 낮다. 고액권 회수율이 낮다는 것은 그만큼 ‘퇴장(hoarding)’했다는 의미다.

화폐개혁을 추진한 국가별로 목적 달성 여부가 확연하게 구별된다. 목적을 달성한 국가는 두 가지 공통점이 발견된다. 하나는 새로운 화폐를 발행해 기존의 화폐를 완전히 대체하되, 다른 하나는 리디노미네이션은 병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부분 선진국이 해당한다.

신흥국은 리디노미네이션을 결부시켜 신권을 발행했다. 그 후 이들 국가는 부패와 위조지폐 방지, 대외 위상 증가 등의 목적 달성은 고사하고 물가가 앙등하면서 경제가 더 불안해졌다. 터키, 모잠비크, 짐바브웨가 대표적인 국가다. 신흥국 중 유일하게 인도의 화폐개혁 조치만 부분적으로 성과를 내고 있다.

그 어느 국가보다 한국도 비트코인 투기가 심하다. 투기 광풍 뒤에 버블이 터지고 심한 후유증에 시달리는 것은 자본주의의 피할 수 없는 길이다. 부패도 심하다. ‘최순실 게이트’를 계기로 기득권에 대한 혐오증이 최고조에 달했다. 문재인 정부도 기득권을 개혁하고 부패를 청산해 정의롭고 깨끗한 사회를 구축해 달라는 국민의 촛불 열망 속에 태어났다.

법화 시대에 화폐개혁을 추진하는 것만큼 국민의 관심이 높은 것은 없다. 리디노미네이션을 단행할 경우 더 그렇다. 특히 경제활동 비중이 놓은 대기업과 부자, 권력층일수록 저항이 크다. 이 때문에 경제가 안정되고 국민 공감대가 형성돼야 어떤 형태든 화폐개혁의 추진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선진국은 이런 전제조건 성숙 여부를 중시했지만 신흥국은 부패 청산과 기득권을 손볼 목적으로 전제조건 충족 여부보다 상황 논리에 밀려 급진적인 방안까지 동원해 추진했다. 이 점이 결과의 차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이명박 정부 때 도입한 5만원권을 폐지하자는 등 화폐개혁 논의가 고개를 들고 있다.

우리 국민의 화폐 생활이 변하는 만큼 화폐개혁도 논의하고 필요하면 추진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신흥국의 전철처럼 상황 논리에 밀려 화폐개혁을 추진하면 실패로 끝나고 엄청난 후폭풍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 국민(주로 부자와 기득권층)도 화폐개혁은 무조건 반대하면서 비트코인 투기와 같은 돈 버는 데는 앞장서는 이중적인 태도는 버려야 한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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