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1등석(퍼스트클래스)은 '하늘 위 궁전'이라고 부릅니다. 누구나 한번쯤 타보고 싶지만 몇백만원부터 1000만원 이상까지 하는 가격 때문에 시도조차 하기 힘든 게 사실이죠.
현재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인천발 LA행 노선의 1등석 가격이 왕복 기준으로 1000만~1200만원 선입니다.
비싼 가격 탓에 1등석 대부분은 텅텅 비어있는 경우가 많다는데요. 때문에 비행기를 자주 타는 승객들 사이에선 '퍼스트클래스 무용론'이라는 말까지 나옵니다.
항공권은 특정일이 지나면 가치가 '0'이 되는 속성을 갖고 있습니다. 경제학에선 이를 썩는 제품(Perishable Goods)이라고 합니다.
만약 1등석 예약 승객이 아무도 없을 경우 비행기가 뜨기 전 가격을 일시적으로 낮춰 몇백만원이라도 받고 태우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하지만 항공사는 빈자리를 고수하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1등석의 시장가치를 유지하기 위해서죠.
그렇다면 비행기 1등석의 가격은 누가 어떻게 매길까요. 1등석을 포함해 항공권 가격을 결정짓는 건 항공사의 RM(Revenue Management·매출 최대화)이라고 불리는 팀입니다.
사실 항공권 가격 책정은 항공사와 승객 사이의 대표적인 심리게임이죠. 항공사는 비행기가 뜨기 전 한정된 좌석을 최대한 비싸게 팔아야 합니다. 반면 승객은 조금이라도 저렴한 가격에 항공권을 구입하려고 하고요.
항공사는 보통 1년 단위로 항공 스케줄을 짭니다. 여행객들이 항공 스케줄을 보통 1년 뒤 것까지 볼 수 있는 이유죠. 이 스케줄표가 승객과 항공사 간 심리싸움의 대상이 되는 게임판입니다.
RM 팀은 과거 동일 노선을 탔던 승객들의 티켓 구매 패턴을 분석해 항공기 1대당 받을 수 있는 최대치의 가격을 계산해냅니다.
이들이 사용하는 '슈퍼 컴퓨터'에는 날씨, 계절은 물론 몇 %의 좌석을 단체 여행객들에 우선 판매할지 공시 운임은 얼마로 책정할지 등을 모두 고려한 프로그램이 깔려 있습니다.
항공사는 이를 부킹 클래스(Booking Class, 예약 등급제)라고 부릅니다. 항공사 별로 자신들만의 노하우가 있고 이는 철저히 비밀에 부칩니다.
이들은 매출의 극대화를 목표로 하지만 빈 좌석으로 비행기가 뜨는 상황을 방지해야 하는 리스크 관리도 동시에 해야합니다.
목표했던 가격보다 승객을 싸게 태우거나 빈 좌석으로 항공기를 띄울 경우 이들은 회사로부터 엄벌을 각오해야 합니다.
어려운 임무가 주어진 만큼 항공사에선 이들에게 확실한 무기도 쥐어주죠. 바로 승객들이 비행기표를 구매하는 패턴을 수십년간 분석한 데이터입니다.
예를 들어 이런 것입니다. 항공업계에 따르면 인천발 뉴욕행 노선은 놀러가는 승객들보다 사업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탑니다. 비즈니스맨들은 업무 때문에 목적지를 찾기 때문에 예약을 해놓고 결제는 하지 않는 노쇼(No-show) 비율이 낮고 주로 출발일이 거의 다 돼서야 비행기를 예약합니다.
굳이 좌석당 가격 편차를 두지 않아도 되는 이유입니다. 이런 노선은 출발일이 임박해도 항공권 가격이 좀처럼 내려가지 않습니다. 만약 승객이 인천발 뉴욕행 비행기를 예약해야한다면 굳이 조금이라도 더 싼 티켓을 찾는데 수고하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입니다.
동남아 노선은 반대입니다. 놀러가는 승객 비율이 높습니다. 여행 계획을 미리 짜는 사람과 아닌 사람, 단체 여행객과 개인 등 비행기를 타는 구성원의 성격이 천차만별입니다. 노쇼 비율도 높습니다. RM팀이 이 같은 노선에 주로 미끼를 많이 던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비수기이면서 출발일이 가까워 온다면 '땡처리'를 노려볼만한 것이죠.
항공사 RM팀이 가장 싫어하는 게 '불확실성'입니다. 노선 성격의 불확실성이 클수록 가격 편차도 커집니다. 반대로 승객 구매 패턴 데이터가 오래 축적된 노선이라면 소비자 입장에선 할인항공권을 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RM팀에서 소비자가 티켓을 살지 말지, 얼마쯤이면 싸다고 느끼는지 등을 훤히 꿰뚫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천을 기준으로 LA, 뉴욕, 도쿄 노선이 대표적입니다.
이들 세 도시가 국내 승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입니다. 그만큼 고정수요가 분명하고 구매 패턴 데이터가 많이 쌓여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만약 목적지가 이곳이라면 1만원이라도 더 깎아보겠다고 여기저기 클릭하는 건 헛수고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요일별 편차도 존재합니다. 통계적으로 항공권은 출발일 기준 화요일에 제일 저렴하고 금요일에 가장 비쌉니다. 이는 단순히 수요와 공급의 원리 때문입니다. 출장이나 여행의 출발일을 금요일로 정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죠.
물론 항공사는 기준가(공시운임)를 마음대로 정할 수 없습니다. 항공사가 특정 노선의 가격을 얼마로 책정하겠다고 국토교통부에 신고해야 합니다.
그럼 국토부는 국제 항공 운송 협회의 공시 운임 등을 참고해 허가를 내주죠. 과도하게 비싸지는 않은지, 항공사 간 가격담합은 없는지 등을 체크합니다.
승객들은 RM팀을 상대로 항공권을 언제 예약하는 것이 좋을까요. 출발일이 여름과 겨울 성수기라면 가급적 빨리 예약을 해야하고 봄, 가을 비수기라면 그리 서두를 필요는 없죠.
다만 비수기라고 해서 항공권 가격이 바닥을 칠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곤란합니다. 항공사 자체적으로 하한가를 정해놓기 때문입니다.
특정 가격 이하로는 팔지 않는다는 내부 규정이 있습니다. 시장 질서를 흐트러뜨리지 않으려는 목적이죠. 바로 1등석 처럼요.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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