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가족 의견 반영 안해…협상 주체 자격 의문
"반올림 측은 보상의 '보'자만 나와도 경기를 일으킨다. 그들에겐 피해자들의 보상보다 더 중요한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지난 26일 '옴부즈만위원회' 주최 포럼이 열린 고려대 인촌기념관. 송창호 삼성직업병가족대책위원회(가대위) 대표는 삼성전자와 반올림의 협상이 지연되는 원인을 이같이 지적했다. 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충남 천안에서 올라왔다는 그는 다소 피곤한 기색이었다.
옴부즈만위원회는 지난해 1월 삼성전자, 가족대책위원회,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반올림)가 합의해 설립된 기구다.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라인에 대해 종합진단을 실시 중이다. 이날 포럼은 1년 동안의 진단활동을 설명하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는 자리였다.
송 대표는 본인이 삼성 직업병의 피해자로 반올림에서 떨어져나온 가대위를 이끌고 있다. 예전보다 줄었지만 가대위에는 현재 피해자 가족 5명이 속해있다. 피해자 2명이 활동하는 반올림보다 오히려 많다. 송 대표는 삼성전자 충남 온양사업장에서 근무하다 혈액암을 판정받았다. 현재 완치한 상태지만 힘든 시기를 겪은만큼 누구보다 피해자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는 인터뷰 내내 무거운 표정이었으나 낮고 차분한 어조에는 힘이 있었다. 송 대표는 "반올림은 피해 가족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조직"이라며 "그들은 피해자들이 가장 원하는 게 보상이란 점을 간과하고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송 대표는 일례로 가대위가 반올림과 함께 활동했을 당시를 떠올렸다. 그는 "피해자 가족들이 삼성 측의 보상을 받아들이면 반올림 측이 만류해 무산되는 경우도 있었다"라며 "반올림이 삼성과의 투쟁을 끝내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고 주장했다.
가대위가 반올림과 등을 돌린 계기는 2014년에 발생했다. 당시 반올림은 반도체, LCD 공장 피해자 가족 33명의 보상을 주장했다. 삼성 직업병 논란의 핵심은 피해자에 대한 신속한 '보상'이었고, 이에 대한 합의점이 도출될 분위기였다. 하지만 당시 반올림의 입장은 뭔가 달랐다는 게 송 대표의 기억이다.
송 대표는 "반올림이 무리한 요구로 보상 협의는 계속 지연됐다"며 "반올림은 피해자 가족을 대변하는 듯 했지만 점점 피해자 가족의 의견을 듣지 않았다. 주객이 전도된 셈"이라고 말했다.
삼성 직업병 논란은 2007년 황상기 씨가 사망한 딸(삼성전자 퇴직자)을 대신해 산업재해 신청을 하고 피해보상을 요구하면서 촉발됐다.
삼성전자·반올림·가대위는 직업병 문제 해결을 위해 2014년 10월 김지형 전 대법관을 위원장으로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에서의 백혈병 등 질환 발병과 관련한 문제 해결을 위한 조정위원회'를 구성했다.
삼성전자는 조정위원회가 2015년 7월 내놓은 권고안에 따라 1000억원을 출연하면서 ‘공익법인 설립’을 제외한 원안을 대부분 수용했다. 그러나 반올림은 공익법인 설립을 요구하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가대위가 보상이 늦어진다는 이유로 공익법인 설립을 적절치 않다고 보는 것과 대비된다.
반올림이 주장하는 공익법인 설립은 삼성전자가 매년 순이익(지난해 기준 22조7000억원)의 0.05%(약 113억원)를 운영비로 출연해야 한다는 게 골자다. 여기에 시민단체 출신 7인의 이사회 구성도 요구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시민운동가들이 운영하는 납입자본금 1000억원, 연간 순이익 약 110억원의 영리 법인이 탄생하는 격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반올림이 주장하는 '배제 없는 보상과 내용있는 사과'도 협상을 지연시키는 주원인으로 꼽힌다. '배제 없는 보상'은 반올림에 제보한 사람은 무조건 보상해줘야 한다는 의미다. 또 '내용 있는 사과'는 위험 관리의 부실이 있었음을 명시해 사과하라는 요구인데, 과학적 연구 결과는 오히려 연관성을 부정하는 내용이 대다수다. 삼성이 반올림의 주장을 쉽사리 수용할 수 없는 이유다.
송 대표는 "반올림은 삼성과의 직업병 투쟁을 통해 인지도가 높은 단체가 됐다"며 "보상이 끝나면 더이상 삼성과 싸울 명분도 사라지지 않겠나"라고 반문했다. 삼성이 받아들이기 힘든 사안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그는 해석했다.
그는 피해자들의 신속한 보상을 위해서 반올림이 피해자 주축의 단체가 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송 대표는 "반올림은 실무자 4~5명과 피해자 2명 정도가 활동한다"며 "실무자 중심의 반올림이 협상 주체로서 자격이 있는지도 의문"이라고 말했다.
삼성과 반올림은 지난해 5월부터 각각 법률 대리인을 선임해 비공개 협상을 진행중이다. 오랫동안 대치하면서 양측 모두 감정이 상한터라 직접 대화는 어려운 상태다. 목적 잃은 싸움은 강산의 변화도 거스른 채 10년을 넘어가고 있다.
이진욱 한경닷컴 기자 showg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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