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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보수 진영에서 정치를 시작했으나 민주당에 정착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문 대통령의 '탕평론'에 부합하는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김 후보자는 1984년 대학 학생회장 신분으로 민정당 당사 점거 농성을 주도하다 구속됐던 전력이 있다. 이후 1987년 김영삼 당시 민주화추진협의회 공동의장의 도움으로 정계에 입문해 1993~1994년에는 젊은 나이에 김영삼 정부에서 대통령비서실 정무비서관을 지냈다. 때문에 그는 '상도동계 막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그의 원내 입성은 지난 2000년 16대 국회에서였다. 김 후보자는 한나라당 당적을 달고 광진구 갑 지역구에 당선돼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
하지만 김 후보자는 첫 원내 입성 후 얼마지 않아 당과는 다른 길을 가게 된다. 그는 2003년 대선 실패 등 위기를 맞은 한나라당 내에서 의원 10여명과 당 혁신운동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탈당해 열린우리당 창당에 나섰다. 당시 정치권은 김 후보자와 한나라당에서 동반 탈당한 이우재, 이부영, 김부겸, 안영근 의원을 놓고 '독수리 5형제'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다.
민주당 이탈 세력과 힘을 모아 열린우리당을 창당한 김 후보자는 2004년 17대 총선에서 같은 지역구에서 재선했다. 당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 후폭풍에 힘입어 152석을 확보한 원내 1당의 지위를 누렸다.
하지만 2008년 열린우리당이 간판을 내리면서 김 의원은 그 책임을 지고 백의종군의 의미로 18대 국회의원 선거에 불출마했다.
이후 그는 지역구도를 깨기 위해 부산으로 지역구를 바꾸고 두 번의 고배를 마신 끝에 20대 국회의원으로 다시 원내에 진입했다.
김소현 한경닷컴 기자 ks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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