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켈의 야심…트럼프와 선 긋고 "EU 공동 국방·예산 추진"

입력 2017-05-31 18:00  

균열 커지는 미국-독일 동맹

트럼프, 무역수지·NATO 방위비 등 맹공
"독일인들 아주 못돼…무역적자 끔찍하다"

메르켈 "미국에 의존하는 시대 끝났다"
더 강한 EU 추진…공동채권 발행 등 구상



[ 박수진/이상은 기자 ] ‘세계 최강국’ 미국과 ‘유럽연합(EU) 맹주’ 독일의 대립이 심상치 않다. 양국 지도자가 날 선 발언을 쏟아냈다. 양국 간 만성적인 무역 불균형 문제에다 복잡한 국내 정치 상황까지 겹쳤기 때문이다. 그 틈새에서 러시아는 표정 관리를 하고 있다.

◆때리는 美-돌아서는 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30일(현지시간) 트위터에 “미국은 독일에 대해 엄청난 무역적자를 보고 있고, 게다가 독일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분담금과 국방비 측면에서 마땅히 내야 할 것보다 훨씬 적게 내고 있다”며 “이는 미국에 매우 나쁜 것으로 앞으로 바뀔 것”이라고 적었다. 지난 25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EU 관계자들에게 독일의 자동차 수출 등을 거론하며 “독일은 못됐다”고 비판한 지 닷새 만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독일 비판이 최근의 일은 아니다. 취임 직전 독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EU는 독일의 목적을 위한 수단”이라며 유로화를 활용한 독일의 수출 확대 정책을 비판했다. 지난 3월 양국 정상회담 때는 NATO 방위비 분담 확대 요구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인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악수 요청을 못 들은 척했다.

메르켈 총리도 당하고만 있지 않겠다는 분위기다. 그는 G7 정상회의가 끝나고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으로 돌아가던 시점인 지난 28일 독일 뮌헨에서 열린 정치행사에 참석해 “우리가 다른 나라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시대는 끝났다. 유럽인의 운명은 우리 손으로 결정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미국과의 관계도 다시 생각해보고, 앞으로 할 말은 하겠다는 ‘폭탄 선언’이었다.

워싱턴포스트는 “메르켈 총리가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에 이어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와 만나는 등 새로운 ‘친구’ 찾기에 나섰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유로화 저평가 유도해”

오랜 동맹관계인 미국과 독일 지도자 간 사이가 틀어진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독일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강한 통상 압박이다. 독일은 지난해 미국과의 교역에서 654억달러 흑자를 냈다. 중국, 일본에 이어 3위다.

미국은 독일의 흑자 배경엔 저평가된 유로화가 있다고 본다. 미국 달러화 대비 유로화 가치는 지난 3년간 4분의 1가량 하락했다. 메르켈 총리는 “유로화 가치는 유럽중앙은행(ECB)의 결정에 따른 것이지 독일이 결정하는 게 아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독일은 그리스, 스페인 등 경제 위기국에 대한 재정 지원을 통해 이들이 EU에 남도록 함으로써 유로화 가치를 계속 낮게 유지하는 편법을 쓰고 있다”고 비판했다. 저평가된 유로화 덕분에 독일은 지난해 미국 등 교역국을 상대로 한 전체 무역흑자가 2970억달러로 전후 최대를 기록했다는 주장이다.

◆트럼프 활용하는 메르켈

두 나라 간 정치적 상황도 불화의 배경이다. 미국과 독일은 수출 상위 10대 품목 중 9개 품목이 중복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공약인 무역적자 축소와 일자리 창출 약속을 지키려면 독일로부터 반드시 양보를 얻어내야 한다.

오는 9월 4선(選)에 도전하는 메르켈 총리 역시 미국의 압박이 싫지만은 않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메르켈 총리의 반(反)트럼프 노선이 총선에서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독일 유권자들 사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반감이 높은 데다, 메르켈 총리가 불확실한 시대에 안정적이고 합리적인 지도자라는 인상을 심어주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불화의 수혜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다. 미 CNBC 방송은 “푸틴 대통령은 최근 미국과 독일 정상 간 긴장 관계를 즐기고 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지난 수십 년간 유럽에서 러시아의 영향력 확대를 막아온 EU와 미국의 공조가 깨지며 러시아의 부담이 줄고 있다고 분석했다.

◆EU 재정통합 추진 계기될까

메르켈 총리가 이번 일을 기회로 삼아 유럽 통합을 강화하는 ‘비밀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독일 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네차이퉁(FAZ)은 메르켈 총리가 차기 총선에서 승리해 총리직 4연임에 성공할 경우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의 공동 채권(유로본드) 발행, 공동 국방예산 편성 등 유럽 통합을 확대하려는 구상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메르켈 총리의 지난 28일 발언도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고 FAZ는 분석했다.

국방 통합을 위해 우르술라 폰 데어 라이엔 독일 국방장관이 세력을 규합하고 있다. 체코 루마니아 네덜란드 프랑스 폴란드 등이 긍정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벨기에 브뤼셀에 유럽 공동 군사행동을 위한 본부를 세운다는 구상이다. 공동 군사행동에 반대한 영국이 EU 탈퇴(브렉시트)를 선언하면서 탄력을 받았다.

메르켈 총리는 지난 15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만나 유로본드 발행에 관해 논의했다. 다만 이들은 각 회원국이 기존에 가진 부채는 책임지지 않고 향후 발행할 채권에 대한 의무만 분담하는 방안을 논의했다고 FAZ는 밝혔다.

현재 독일은 독일 국채, 프랑스는 프랑스 국채 등을 각각 발행하고 있다. 유로본드는 이와 달리 공동으로 채권을 찍고 그 책임도 회원국이 나눠 지기로 하는 것이다. 이는 유로존의 공동 예산을 마련한다는 의미로, 자연스레 예산을 총괄할 ‘재무장관’도 필요해진다. 재정 통합에 한 발짝 더 다가가는 것이다. 마크롱 대통령도 이 방안을 지지한다.

유럽 통합 강화는 메르켈 총리만의 생각은 아니다. FAZ는 EU 집행위원회가 2025년까지 유로존 가입 국가를 EU 회원국 전체(영국 제외 27개국)로 확대하고 재무장관을 임명하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고 유럽의회 회의자료를 인용해 보도했다. 브렉시트,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갈등을 계기로 ‘더 강한 유럽’을 만들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쉽지 않았던 유럽 재정동맹 구상이 급물살을 타기는 간단치 않을 전망이다. 유로존 가입 조건을 충족하고도 가입하지 않고 있는 스웨덴 덴마크는 물론 조건에 미달하는 폴란드 체코 헝가리 루마니아 등을 억지로 통합할 경우 논란이 예상된다. 유로본드 발행을 통한 공동예산 편성 구상도 구조 개혁이 필요한 남유럽, 동유럽 국가들이 무임승차할 기회를 줄 수 있다.

워싱턴=박수진 특파원/이상은 기자 ps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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