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당혹…"예산 관련한 이야기한 적 없다"
정의용 "사드 조사는 국내 조치…미국에 설명할 것"
[ 정인설 / 조미현 기자 ]
지난달 31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만난 딕 더빈 미국 상원의원이 문 대통령에게 “미국인이 낸 세금으로 운용하는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를 한국에 배치했는데 한국에서 논란이 되는 게 놀랍다”는 우려를 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정치권에서 한·미 관계의 불확실성이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는 가운데 국내에서 확산되고 있는 사드 논란이 한·미 동맹을 악화시키는 불안 요인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청와대는 당초 더빈 의원의 이런 우려를 전하지 않고 뒤늦게 해명해 의도적으로 숨긴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사드 반대 정서 이해 안돼”
더빈 의원은 지난달 31일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어려운 예산 상황에 직면해 많은 프로그램을 삭감하고 있는데 한국이 사드를 원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9억2300만달러(약 1조300억원, 사드 배치 및 운용 비용)를 다른 곳에 쓸 수 있다고 문 대통령에게 전했다”고 말했다. 더빈 의원은 미국 국방 예산을 담당하는 연방 상원 세출위원회 국방소위원회 간사를 맡고 있다.
그는 문 대통령을 예방해 40분간 대화한 뒤 인터뷰에서 “내가 만약 한국에 산다면 북한이 전쟁 발발 시 한국에 퍼부을 수백 발의 미사일로부터 (국민을) 지키기 위해 되도록 많은 사드 시스템을 원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엔 왜 이런 생각이 논의를 지배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 나는 국가 안보와 방어가 (논의를) 지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힌 뒤 이런 뜻을 문 대통령에게도 전했다고 소개했다.
더빈 의원은 또 ‘한국 국방부가 사드 장비 추가 반입 보고를 의도적으로 누락했다’는 문 대통령과 반대 의견을 나타냈다. 그는 “사드 협상은 2년간 진행됐고 땅 구입과 그것을 둘러싼 모든 논쟁, 롯데에 대한 중국의 보복 조치는 잘 알려져 있다”며 “이것이 어떻게 진행됐는지는 비밀이 아니며, 사드 미사일 시스템 운반에 대한 TV 보도도 있었다. 사드를 몰래 반입한 것은 아니다”고 했다.
청와대 “지극히 미국적 관점 이야기”
더빈 의원의 인터뷰가 논란이 되자 청와대가 뒤늦게 진화에 나섰다. 청와대 관계자는 1일 “더빈 의원이 사드 관련 예산을 다른 곳에 쓰겠다는 얘기를 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더빈 의원이 ‘한국에 와서 보니 사드 관련 뉴스가 너무 많고 미국인이 낸 세금으로 한국에 사드를 배치하는데 한국에서 논란이 된다는 게 놀라운데, 이에 대해 문 대통령의 의견을 듣고 싶다’는 말은 한 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전날 브리핑에선 더빈 의원의 이런 발언을 전하지 않았다. 당시 문 대통령과 더빈 의원의 대화 직후 열린 브리핑에서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더빈 의원이 ‘한국 도착 즉시 사드 뉴스를 많이 들었는데, 이 점에 대한 대통령의 생각을 듣고 싶다’고 물었다”고만 전했다. 국내에서 확산된 사드 논란에 대한 더빈 의원의 우려는 전혀 전달하지 않은 것이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미국 정치인이 지극히 미국 국익을 위해 미국적 관점에서 이런 얘기를 한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해 전체 전문에서 일부를 가감해 전달한 것으로 안다”고 해명했다.
한·미 정상회담에 영향 줄지 촉각
미 의회조사국(CRS)은 31일(현지시간) 한국과 미국 모두 비슷한 시기에 정권 교체가 이뤄진 뒤 한·미 동맹의 불확실성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미국의 이런 기류를 의식해서인지 청와대는 사드 관련 발언을 자제하며 논란을 봉합하려 했다. 지난달 30일 문 대통령이 사드 추가 반입 보고를 누락한 것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한 뒤 이틀간 공세를 취한 것과 대조적이었다.
이달 있을 한·미 정상회담 준비를 위해 방미길에 오른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도 1일 인천국제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나 “어제 외교부를 통해 미국 측에 이번 사드 발사대 보고 누락 경위를 조사하게 된 배경을 충분히 설명했다”며 “국내적 조치이고 한·미 동맹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점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상철 안보실 1차장도 빈센트 브룩스 한미연합사령관을 만나 똑같은 얘기를 했다”고 설명했다.
정인설/조미현 기자 surisur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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