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도서관이자 '덕후'의 아지트
현대카드 쿠킹 라이브러리 요리책 1만권
재료 사서 셀프쿠킹 코너에서 요리도
CGV 라이브러리, 영화 해설 해주고 현대모터스튜디오선 자동차 시승까지
[ 김희경 기자 ]
30대 여성 직장인 A씨는 주말이면 라이브러리부터 찾는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있는 ‘현대카드 쿠킹 라이브러리’가 그런 곳 중 하나다. 요리책만 1만 권에 달한다. 현대카드 선정 레시피를 소개받아 해당 요리를 할 수 있는 ‘재료 키트’를 구매하고 셀프쿠킹 코너에서 직접 요리를 한다. 서울 충무로의 CGV 극장에 들러 영화를 보고, 같은 건물의 ‘CGV 씨네 라이브러리’로 가 유명 평론가들의 영화 해설도 듣는다.
서울 논현동에 있는 현대차의 현대모터스튜디오와 지난달 31일 개관한 삼성동 코엑스의 신세계 ‘별마당 도서관’도 곧 들러볼 참이다. 별마당 도서관은 장서만 5만 권을 갖췄다는 얘기에 귀가 솔깃해졌다.
복합문화공간으로 뜨는 기업 도서관
국내 주요 기업이 세운 ‘라이브러리’가 도서관 그 이상의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책을 읽고 공부하던 그런 도서관이 아니다. 관심 분야를 더 깊이 파거나 관련 체험까지 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이다. 대략 1만 권 이상의 책을 갖추고 고객 개인의 취미와 감성을 발양시킬 수 있어 ‘취향의 메카’가 되고 있다.
현재까지 기업이 설립한 라이브러리 수는 총 12개. 2010년 네이버가 경기 성남시 본사에 세운 그린팩토리가 효시다. 이후 2013년 현대카드가 디자인 라이브러리를 포함해 4개 라이브러리를 잇달아 설립하면서 본격 확산됐다. 현대차도 현대모터스튜디오라는 이름의 자동차 라이브러리 4개를 운영 중이다. 이 밖에 CJ CGV, 쉐라톤워커힐호텔, 대신증권도 하나씩 설립했다. 지난달 31일엔 신세계가 서울 코엑스몰에 라이브러리를 냈다. 이달 말 완공될 서울 을지로 KEB하나은행 본점 사옥에도 도서관이 마련될 예정이다.
‘덕후’의 아지트로 각광받아
국내 기업들이 만든 라이브러리는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나뉜다. 타깃형과 오픈형이다. 분야를 세분화해 마니아들의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타깃형으로는 현대카드의 디자인, 뮤직, 트래블, 쿠킹 라이브러리가 대표적이다. 뮤직 라이브러리에는 책을 보러 가는 사람보다 LP 음악을 즐기기 위해 가는 사람이 더 많다. 현대모터스튜디오, CGV 씨네 라이브러리도 여기에 해당한다.
황재현 CGV 커뮤니케이션팀장은 “국내외 주요 작품의 시나리오와 콘티북뿐만 아니라 영화 원작인 만화, 소설까지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자동차 애호가들에게 현대모터스튜디오는 필수 코스다. 자동차 관련 인터넷 카페엔 “에어백, 신차 체험을 하고 자동차 정비 서비스도 받아서 좋았다” “다른 체험도 더 해보고 싶다”는 식의 후기가 빼곡하다. 지난 4월 문을 연 현대모터스튜디오 고양점은 특히 부지 1만6719㎡(약 5058평)에 달하는 규모로 화제가 되고 있다.
신세계 별마당 도서관을 비롯해 네이버의 그린팩토리, 쉐라톤워커힐호텔의 워커힐 라이브러리, 대신증권 도서관 등은 오픈형이다. 다양한 분야의 책을 갖추고 있어 일반인이 자유롭게 들러 편하게 쉬며 독서할 수 있다. 명사들의 초청강연도 열린다. 신세계 별마당 도서관에선 이달 한 달 동안 매일 소설가 김영하,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아동학부 교수 등 각 분야의 전문가가 강연한다.
공공도서관 방문자 수 추월
기업 도서관 방문자가 많다 보니 ‘라이브러리 열풍’이란 말도 생겼다. 현대모터스튜디오의 하루 평균 방문자는 3500명, 한 해 평균 127만7500명에 달한다. 네이버 그린팩토리와 현대카드 라이브러리에도 연평균 각각 65만7000명, 58만4000명이 찾는다.
이 같은 시민들의 호응에 다른 기업의 라이브러리 설립도 이어질 전망이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미래 유통의 경쟁력은 제품을 잘 파는 게 아니라 소비자 시간을 차지하는 것에서 나온다”고 말했던 것과도 연결된다. 브랜드를 각인시키는 효과도 크다. 김나영 현대카드 스페이스 브랜드1팀장은 “일상에서 지속적으로 색다른 가치를 제공하고 현대카드만의 매력을 확실히 느끼게 해줄 수 있는 좋은 마케팅 수단이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일본 쓰타야서점의 기획자 마스다 무네아키가 저서 《지적 자본론》를 통해 주장한 ‘서드 스테이지(Third Stage)’ 이론에도 부합한다. 부족한 물자를 충족해주는 ‘퍼스트 스테이지’, 다양한 상품을 제공하는 ‘세컨드 스테이지’에 이어 이제 넘쳐나는 물건과 서비스 속에서 고유한 취향과 특별한 감성을 먼저 제안하는 ‘서드 스테이지’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주장이다. 그는 “책과 음반은 그저 평범한 상품으로 보일 수 있다”며 “하지만 고객들에게 새로운 가치를 제공해 삶 자체를 바꾸는 지적 자본에 해당하며 기업들은 이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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