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현실 무시한 벤처 출자기관 통합론

입력 2017-06-06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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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호 증권부 기자 highkick@hankyung.com


[ 김태호 기자 ] “정부가 민간에 길을 터주지 않으면 에어비앤비 같은 유니콘(기업 가치 10억달러 이상의 스타트업)은 키우기 어렵습니다.”

초기 기업에 투자하는 한국벤처투자와 성장 단계 기업에 투자하는 한국성장금융을 신설 중소벤처기업부 산하로 통합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한 국내 벤처캐피털(VC) 대표는 이렇게 하소연했다. 성격이 다른 두 자금이 통합되면 민간 자본이 빠져나가고 벤처 투자가 위축될 것이란 지적이다.

두 곳은 국내 양대 VC 출자기관이다. 이들이 조성한 ‘모(母)펀드’ 자금은 VC 펀드에 투입되고 VC는 이 돈으로 스타트업과 벤처기업에 투자한다. 중소벤처기업부로의 승격을 앞두고 있는 중소기업청은 지난주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업무보고에서 두 기관의 통합 필요성을 제기했다. 벤처기업 지원 정책의 일관성과 투자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취지다.

업계에서는 곧바로 “VC시장에서 민간의 역할이 더욱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한국벤처투자 재원은 정부 예산인 반면 성장금융 재원은 민간 자금 성격이 강하다. 산업은행과 기업은행 등이 주요 출자기관이지만 은행권청년창업재단,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도 자금을 위탁하고 있다. 두 자금이 통합되면 민간 자본이 중소벤처기업부 관리를 받게 된다. 정부 예산처럼 사용될 것이란 우려로 민간 자본이 이탈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주요 출자 기관이 한 곳으로 줄어들면 VC들의 투자 관행이 더욱 보수적으로 변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미국의 경우 상당수의 VC 출자금은 민간 주도의 펀드오브펀드(재간접펀드)에서 나온다. 다양한 펀드가 존재하다 보니 한 번 투자에 실패해도 자금을 조달할 길이 많다. 에어비앤비 같은 유니콘이 탄생할 수 있는 배경이다.

지난해 국내에서 가장 많은 투자금을 유치한 스타트업은 화장품 업체 ‘미미박스’였다. 이 기업에 투자한 VC 중 국내 투자자는 없었다. 경영실적이 ‘적자’였기 때문이다. 한 VC 관계자는 “그나마 두 곳이었던 출자기관이 한 곳으로 줄어들면 투자가 더욱 보수적으로 변하지 않겠냐”고 털어놨다.

김태호 증권부 기자 highkic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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