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 치는 바다 위 조각배 같은 처지
대학의 과업과 혁신의 방향 확고히 하고
스스로 학습하고 도전하는 인재 키워야
김도연 < 포스텍 총장 >
4차 산업혁명은 최근 들어 가장 많이 쓰이는 단어 중 하나인 듯싶다. 발전하는 기술과 그에 따른 인류 삶의 혁명적인 변화를 이야기하는 것인데, 이는 현재 진행형이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이 본격적으로 소개된 것은 10년도 안 된 일이지만 우리 생활이 이 작은 기계에 의해 얼마나 바뀌었는지 되돌아보면 누구나 혁명을 실감할 수 있다. 미래에는 더 큰 변화가 있을 텐데 그 시대를 살아갈 젊은이를 교육하는 대학은 무엇을 준비하고 있나.
교육의 목표를 포함해 그 내용과 방법에서도 당연히 전(前) 세대 대학과는 크게 달라야 하고 많은 보완이 있어야 할 것인데 불행하게도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언급한 것처럼 변화의 속도에서 기업이 시속 100마일로 달리는 고급 세단이라면 대학은 시속 10마일밖에 못 달리는 부서진 고물 자동차다. 대학은 뒤따라오는 다른 차까지 속도를 낼 수 없게 만드는 사회의 애물단지라는 비판이다.
“19세기 의사가 어느 날 현대적인 외과병원에 오면 그는 어떤 진료도 못할 것이다. 그러나 19세기 교수가 오늘의 대학에 나타난다면 그에게는 강의실, 연단, 칠판, 그리고 학생 등 모든 것이 익숙하지 않겠는가? 문학, 역사, 철학, 언어 등은 과목까지 익숙할 것이고 수업 방식도 동일할 것이다.” 정체돼 있는 대학을 아쉬워한 제임스 두데스텟의 이야기인데 그는 미국 미시간대 총장을 지냈다. 대학에 대한 또 다른 의견은 사뭇 냉소적이다. 즉, “대학은 지식의 창고다. 학생들은 상당히 많은 지식과 자신감을 갖고 대학에 입학하지만 몇 년 뒤 졸업할 땐 실제적으로 아무런 전문지식도 갖추지 못한 채 대학 문을 나선다. 그 사이에 학생들은 지녔던 지식을 모두 털어 대학에 쌓아 두고 나가는 것 아닐까? 그러기에 대학은 진실로 지식의 창고다.” 이것도 미국의 어느 학자 이야기인데 여하튼 대학은 한결같은 비판의 대상이다. 우리 사회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대학들은 사실 사면초가 신세다. 국민들은 대학에 대해 좀 더 직접적으로 국가 발전에 기여하라고 압박하고 있으며, 동시에 학생들은 불확실한 미래의 삶을 개척하는 데 대학이 보다 뚜렷한 길을 제시하라고 요구하는 상황이다. 그리고 정치적 이슈로 등장했다가 어느덧 사회규범이 돼 버린 ‘반값 등록금’은 이미 10년 가까이 대학을 옥죄고 있다. 이는 어쩌면 대학을 신뢰하고 성원하는 국민이 전체의 절반도 안 되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서글픈 일이다. 게다가 몇 년 뒤면 맞을 본격적인 입학생 수 감소로 대학은 쓰나미 같은 충격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우리 대학들은 마치 폭풍이 몰아치는 바다를 항해하는 자그마한 범선(帆船) 같은 존재다. 정확한 목표를 갖고 뱃길의 방향을 확실히 잡지 않으면 어떤 바람도 도움이 되지 않기에, 이제 대학들에 더욱 중요한 것은 혁신의 속도가 아니라 혁신의 방향일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대학의 근본 역할인 교육, 즉 미래를 살아갈 학생들의 행복한 삶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현재 학생들은 신인류(新人類)다. 많은 과학자들의 예측처럼 이들의 기대수명은 120~140세에 이를 것이며 따라서 이들은 대학 졸업 후 적어도 70~80년은 경제사회활동을 해야 할 것이다. 졸업 후 기껏해야 30~40년의 활동만을 고려한 과거 세대와는 대학 교육이 근본부터 달라져야 할 가장 큰 이유다. 결국 이렇게 긴 사회 활동기간을 버틸 수 있는 직업능력(職業能力)을 배양하는 것이 대학 교육의 첫 번째 책무이며, 이를 위해서는 졸업 후에도 끊임없이 스스로 학습하는 자세를 심어줘야 할 것이다.
과거 대학이 ‘배운’ 인재를 배출했다면 앞으로는 ‘배울’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 아울러 실패해도 긍정적인 자세를 잃지 않는 도전정신과 사회를 따뜻하게 만드는 배려심을 지닌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 이는 대한민국의 미래가 걸린 일이다.
김도연 < 포스텍 총장 dohyeonkim@postech.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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