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정동의 가격의 비밀]수입맥주는 왜 하필 '4캔'에 만원일까

입력 2017-06-08 09:00  


'수입맥주 4캔에 1만원'. 편의점에서 가장 많이 내거는 판촉 문구 중 하나입니다. 소비자 각인 정도가 매우 높아 이제 편의점에 이 문구가 없으면 허전하기까지 하죠.

편의점 입장에선 더운 여름이나, 주말을 앞둔 늦은 밤에 소비자들을 매장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유인효과'가 있는 상품으로 이 수입맥주가 자리잡은지 오래입니다.

특히 요즘처럼 다양하고 개성 있는 맥주에 대한 수요가 높아진 때에는 호프집 생맥주보다 편의점 수입맥주를 먼저 떠올리는 애주가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근데 편의점에서는 왜 하필 맥주 4캔을 묶어 만원에 팔까요. 3캔도, 5캔도 아닌 4캔인 이유가 궁금하지 않나요.

수입맥주가 편의점 매대에 본격적으로 자리잡기 시작한 2000년대 중반만 해도 수입맥주는 1캔에 4000원 안팎이 보통이었습니다. 종류도 대부분 일본 특정 회사의 제품으로 한정적이었고요.

같은 용량을 기준으로 1캔에 2500원 안팎으로 판매했던 국산맥주가 가격 경쟁력에서 우위에 있었죠. 그러다 수입맥주의 가격이 점점 떨어져 지금에 이르게 됐습니다.

'수입맥주 4캔에 1만원'이 표어처럼 굳어진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맥주산업이 갖고 있는 특성이고, 둘째는 세금입니다.

맥주는 규모의 경제 원리가 적용되는 대표적인 산업입니다. 초기 투자비용이 크지만 생산량이 많아질수록 평균비용은 오히려 감소하는 구조, 이게 바로 규모의 경제이죠.

많이 팔아야 좋은 것은 어느 기업이나 마찬가지지만, 특히 규모의 경제 원리가 작동하는 산업이라면 많이 팔수록 이익이 더 크게 늘어납니다.

이 규모의 경제 원리가 수입맥주의 가격을 끌어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맥주 제조사 입장에선 1캔으로 큰 이익을 남기는 게 가장 좋겠지만, 차선으로는 적은 이익을 남기고 10캔을 파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얘기입니다.

왜냐하면 특정 생산량 이상부터는 기업 입장에선 추가 비용이 거의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최소 어느 정도 이상은 생산해야 이 사업을 유지할 수 있다는 얘기겠지요. 맥주회사가 비싸게 파는 것보다 많이 파는 것에 집착하는 이유입니다.

이 때문에 편의점에선 2010년경부터 비정기적으로 진행하던 수입맥주 할인행사를 연중으로 바꿨습니다. 어느 정도 소비자들이 수입맥주에 대해 익숙해졌다고 판단한 것이죠.

기업 입장에선 1캔을 비싸게 파는 것보다 4캔을 적정가에 파는 것이 장기적으로 훨씬 이득인 '규모의 경제'로의 회귀 본능이 작동한 것이고요.

물론 5캔에 1만원 등으로 가격을 더 낮춰 팔면 판매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같은 용량의 국산맥주가 2500원(500mL 기준)에 판매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합니다.

맥주수입사 입장에서는 소비자들을 국산맥주 대신 수입맥주로 '유혹'하면서 최대의 이익을 남길 수 있는 적정 수준을 선택해야겠죠. 3캔도 아니고 5캔도 아닌 4캔에 1만원 말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세금입니다. 한국에서 수입맥주에 붙는 세금은 72%죠.(국산맥주도 동일합니다) 수입원가와 관세를 합한 값이 과세표준, 즉 세금을 부과하는 기준이 됩니다.

예를 들어 A라는 맥주수입회사가 B라는 맥주를 1캔당 500원에 들여오고, 해당국가의 관세가 10%라면 550원이 과세표준이 되는 것이죠.

이 550원에 수입맥주의 주세인 72%(396원)가 매겨지면 946원이 나옵니다(2015년 기준 국내에 가장 많이 수입된 맥주 상위 10개 브랜드의 500mL당 수입원가는 476원이었습니다).

여기에 교육세, 부가세 등 추가적인 세금이 매겨지고 편의점처럼 맥주를 대신 팔아주는 유통사에도 비용을 지불합니다. 그러면 보통 1500원 안팎에서 원가가 결정되는데 현재 수입맥주를 2500원가량에 판매하고 있으니 1000원정도의 이익을 남기는 셈입니다.

이게 끝이 아닙니다. 수입맥주는 '수입신고가격'을 기준으로 세금을 매깁니다. 맥주수입사에서 국세청에 "우리는 캔당 500원에 들여오고 있습니다."라고 신고한다면 그 가격에 세금을 매기는 것이죠. 실제 이 가격에 들여왔는지는 그 업체만 알 수 있습니다.

신고가를 낮게 부를 수록 세금을 덜 낼 수 있고, 이익을 더 낼 수 있습니다. 가끔 특정 국가 예를 들어 '벨기에 맥주 6캔 1만원' 처럼 판매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맥주수입사가 특정 국가의 맥주를 많이 들여오는 조건으로 수입가를 대폭 낮춘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논란도 있습니다. 국산맥주회사들은 정부가 수입맥주와 국산맥주의 과세표준에 차이를 둬 공정한 가격 경쟁을 가로막는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수입신고가와 관세를 더한 값에 과세하는 수입맥주와 달리 국산맥주는 판매관리비, 영업비, 제조사 마진까지 합해 나오는 출고가에 세금을 매깁니다. 주세는 72%로 동일한 데도 국산맥주회사들이 더 적은 이익을 가져가는 이유가 이 때문입니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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