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혈경쟁…문 닫는 주유소 속출

입력 2017-06-09 18:28   수정 2017-06-10 07:22

작년 한해 763곳 휴·폐업

알뜰주유소 벌써 1100여곳…일반주유소 '속수무책'

"정부 지원받는 알뜰주유소와 처음부터 공정 경쟁 불가능"
영세업체, 폐업비용 1억 없어 장기휴업 상태로 방치된 곳도



[ 고재연 기자 ] 과당경쟁과 유가 하락 등에 따른 경영 악화로 주유소 휴·폐업이 속출하고 있다. 국도변에는 흉물스럽게 방치된 ‘유령 주유소’도 늘어나고 있다. 정부 지원을 받는 알뜰주유소를 원망하는 일반 주유소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9일 한국주유소협회에 따르면 2011년 1만2901곳이던 전국 주유소는 지난해 1만2010곳으로 줄었다. 작년 한 해에만 주유소 763곳이 문을 닫았다. 새로 생겨난 주유소는 66곳에 그쳤다.

주유소 폐업이 늘어나는 근본적인 원인은 공급 과잉이다. 주범은 정부에서 각종 지원을 받는 알뜰주유소다. 국제 유가가 고공행진하던 이명박 정부 시절 기름값을 끌어내린다는 명분으로 한국석유공사가 다른 주유소보다 싼 값에 기름을 제공하기 시작한 곳들이다. 2012년 884곳으로 출발한 전국 알뜰주유소는 2016년 1168곳으로 늘어났다. 세금을 투입해 알뜰주유소 사업자에게 시설 개선 지원, 소득세·법인세·재산세 감면 등 특혜를 줬다. 직·간접적으로 들어간 예산은 매년 200억원에 달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알뜰주유소를 바라보는 일반 주유소의 눈길이 고울 리 없다. 더욱이 지난해 폐업 주유소의 90% 이상이 일반 주유소였다. 업계 관계자는 “누가 봐도 불공정 경쟁”이라며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지금보다 더 많은 일반 주유소가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석유공사뿐만 아니다. 한국도로공사와 농협중앙회도 각각 ‘EX-OIL’과 ‘NH-OIL’이라는 브랜드로 알뜰주유소 운영에 뛰어들었다. 전국 고속도로 알뜰주유소는 도로공사가 주유소 운영권을 개인에게 임대하는 방식이다.

도로공사는 주유소를 평가하는 기준에 ‘기름값 인하 노력’을 넣어 임차인들에게 가격 인하를 압박하고 있다. 보다 못한 한국주유소협회와 한국석유유통협회는 발끈했다. 지난 3월 고속도로 주유소 운영자들과 함께 경북 김천의 도로공사 본사를 항의 방문한 데 이어 조만간 공정거래위원회에 고속도로 주유소에 대한 부당경영 간섭 행위로 제소할 예정이다.

지방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농협중앙회에서 운영하는 알뜰주유소의 입김이 워낙 세기 때문이다. 경북 지역에서 주유소를 운영하고 있는 김모씨는 “농협알뜰주유소는 농업용 면세유 배정 권한 등을 가지고 있다”며 “우월적 지위와 낮은 가격으로 지역 주유소 상권을 지배하고 있어 영세한 주유소들은 경쟁을 배겨낼 수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경쟁이 워낙 치열하다 보니 세차 수입으로 근근이 버티는 곳들도 많다. 요즘 소비자도 스마트폰 앱으로 주유소별 휘발유, 경유 가격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되면서 인근 주유소보다 가격이 조금이라도 높으면 손님을 구경하기가 힘들다. 카센터, 편의점을 함께 운영하는 주유소는 그나마 괜찮지만 대도시 도심에서 주유소를 단독으로 운영하는 사업자들은 ‘가족 인건비 따먹기’에 매달릴 정도로 고전하고 있다.

폐업을 하는 것이 수월한 것도 아니다. 평균 1억원에 달하는 폐업 비용을 감당해야 한다. 주유소는 큰 기름 탱크를 갖춰야 하기 때문에 폐업할 때 토양 오염 정화 비용이 들어간다. 시설 철거비도 제법 든다. 도로 주변에서 주인 없이 버려진 ‘유령 주유소’들이 심심찮게 보이는 이유다. 도심의 목 좋은 주유소는 커피 전문점 등으로 활용되는 경우도 있지만 지방 주유소들은 이도 여의치 않아 장기휴업 상태로 주유소 부지를 방치하고 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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