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회의서 야당에 작심 발언
"외교장관 없이 정상회담 어떻게…보이콧 압박 받아들이기 어렵다"
'초강수 선택' 배경은
"헌법재판소장 인준 실패 각오…여론 지지받는 추경·정부조직법
'야당 끝까지 반대 못할 것' 계산도"
[ 손성태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은 15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 보고서 채택 논란과 관련해 “검증 결과를 보고 최종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국민의 몫이고, 저는 국민의 뜻에 따르겠다”며 임명 강행을 예고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여민관에서 수석보좌관회의 인사말을 통해 “야당도 국민의 판단을 존중해 주길 바란다”며 이같이 밝혔다. 문 대통령은 17일까지 시한을 못박고 재송부한 인사청문회 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을 경우 18일께 강 후보자를 임명할 것으로 예상된다. 문 대통령은 “지금은 한·미 정상회담이 보름밖에 남지 않았고 이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와 주요 국가들과의 정상회담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며 “외교장관 없이 대통령이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느냐. 저는 국민의 뜻에 따르겠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강 후보자에게 반대하고 있는 야당을 향해 작심 발언을 쏟아냈다. 문 대통령은 “야당과의 협치를 위해서도 대통령부터 앞장서서 역대 어느 정부도 하지 않은 노력을 하고 있다”며 “그런데 이런 대통령과 정부의 노력이 마치 허공을 휘젓는 손짓처럼 허망한 일이 되고 있는 게 아닌지 참으로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어 “강 후보자에 대한 야당들의 반대가 우리 정치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라면서도 “그러나 반대를 넘어서서 대통령이 그를 임명하면 더 이상 협치는 없다거나 국회 보이콧과 장외투쟁까지 말하며 압박하는 것은 참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비난했다.
문 대통령은 또 “국무총리와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감사원장 등의 임명은 국회 동의를 받도록 헌법에 규정돼 있다. 대통령이 국회의 뜻을 반드시 존중해야 한다”며 “장관 등 그 밖의 정부 인사는 대통령 권한이므로 국회가 정해진 기간 안에 인사청문 경과보고서를 송부하지 않으면 대통령이 그대로 임명할 수 있게 돼 있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강 후보자에 대해서는 “흔히 쓰는 표현으로 글로벌한 인물”이라며 “국제사회에서 인정받는데 한국에서 자격이 없다면 어떻게 납득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달 말 한·미 정상회담을 앞둔 상황에서 강 후보자의 임명 강행은 어느 정도 예견됐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국회 인준 절차를 거쳐야 하는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와 추가경정예산안,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 등을 ‘불모’로 잡혀가면서까지 강경 발언을 쏟아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최악의 경우 김 후보자의 인준 실패 후 헌재소장 대행체제를 유지하는 상황까지 각오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여론의 압도적 호응을 얻고 있는 추경안과 정부조직법을 야당이 끝까지 보이콧하지 못할 것이란 계산도 깔렸다.
문 대통령은 이날 강준석 해양수산부 차관을 임명한 데 이어 차관급 인사 26명에게 임명장을 수여했다. 야당 반발 등으로 청문 절차가 지체되고 장관 임명이 늦어질 수 있다고 보고 당분간 차관체제로 국정을 이끌어 가겠다는 의지로 분석된다.
손성태 기자 mrhan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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