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1000만원 전 재산 부산대에 남기고 떠난 익명의 할머니

입력 2017-06-16 08:28  

혈혈단신 80대 할머니 세상 떠나며 “어려운 학생 돕는 데 써달라” 재산 모두 기부
양녀처럼 할머니 모셔온 친척이 “이름은 절대 밝히지 말아달라”며 부산대에 전달

80대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면서 평생 모은 돈 1억1000만원을 부산대학교 학생들을 위해 써달라며 맡기고 떠나 훈훈한 감동을 주고 있다.

부산대학교(총장 전호환)는 경남 창원에 거주해오다 최근 노환으로 세상을 떠난 L할머니(87)가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사용해 달라는 유지와 함께 평생 모은 재산 1억1000만 원을 기탁해 왔다고 16일 밝혔다.

1931년 경북 청도에서 2남 3녀 중 둘째 딸로 태어난 L할머니는 남편과 일찍이 사별한 뒤 슬하에 자녀가 없이 경남 창원에서 홀로 살아오다가 인생 말년에 요양원에서 투병생활을 하던 중 최근 별세했다.

L할머니의 이번 거액 기부는 평소 양녀처럼 곁에서 L할머니를 모시며 돌봐주었던 친척 A씨(50·여·경남 창원시 거주)를 통해 이뤄졌다.

지난 9일 할머니의 재산을 부산대 발전기금재단 측에 기부해온 A씨는 “돌아가신 L할머니께서는 혼자 사시며 자신의 형편이 어려운데도 불구하고 늘 가정형편이 어려워 공부에 힘이 드는 학생들에게 도움을 줬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계속 해오셨다”고 전했다.그는 “할머님의 유지를 받들고자 가족들과 의논을 거쳐 부산대학교에 할머니의 뜻과 재산을 대신 전할 수 있게 돼 참 기쁘고 보람된다”고 경위를 설명했다.

이날 L할머니의 재산을 부산대에 전달해준 A씨 본인도 2012년부터 3년 동안 해마다 100만 원씩 300만원을 부산대 발전을 위해 기부하는 등 나눔을 실천해왔다.

A씨는 “우리 딸이 부산대 학생이어서 학부모로서 관심이 컸던 데다, 딸이 학교 다니면서 몇 년 동안이나 국가장학금을 받고 다녀서 고마운 마음에 뭔가 나도 돕고 싶어서 형편에 맞춰 기부를 약간 하게 된 것일 뿐”이라고 겸연쩍어 하며 “딸이 무사히 학교를 잘 다니고 훌륭하게 자라줘서 정말로 고맙다”고 말했다.

1억1000만 원을 부산대에 기부한 L할머니도, 또 할머니를 양녀처럼 모시다가 재산을 부산대에 전달해주고 자신도 부산대에 300만 원을 기부했던 A씨도 모두 이름을 밝히기를 극구 사양했다. A씨는 “할머니가 살아 계실 때 절대 이름을 밝히기를 원하지 않으셨다”고 전했다.

전호환 부산대 총장은 “얼굴도 뵌 적이 없는데 ‘아름다운 선물’을 모두 주고 떠나신 할머니의 소중한 뜻을 깊이 새겨 부산대는 기부금 전액을 ‘L할머니 장학기금’으로 조성해서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지원하는 데 소중히 사용하겠다”고 말했다.전 총장은 “지난해 기초생활수급 천사 할머니에 이어, 이번에도 자신이 평생 모은 재산과 일생을 우리 대학 발전과 학생들을 위해 남기고 떠나신 그 감동적인 마음을 받들어 우리 사회를 따뜻하게 이끄는 우수한 동량(棟梁)을 키우는 데 더욱 매진하겠다”고 감사의 뜻을 밝혔다.

부산=김태현 기자 hy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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