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교 사태' 부른 카타르·사우디 20년 갈등…중동 정치지형 바뀌나

입력 2017-06-18 17:40  

글로벌 컨트리 리포트


[ 허란 기자 ]
카타르와 주요 아랍 국가들의 외교 단절 사태가 3주차로 접어들었다. 중동의 위기감이 짙어지고 있다는 신호가 여기저기서 감지된다. 이란 터키 등이 식량 지원에 나서며 카타르는 혼자가 아님을 증명했다. 중동의 정치 지형이 새로운 모습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하마드의 야망

지난 5일 사우디아라비아를 필두로 바레인 아랍에미리트(UAE) 이집트가 카타르에 대해 테러리즘을 지원했다는 이유로 단교를 선언했다. 예멘 몰디브 리비아임시정부도 곧바로 단교를 발표했고, 서아프리카의 모리타니와 모리셔스도 가세했다. 이들 9개국은 이슬람교의 성지 메카가 있는 사우디를 중심으로 결집해 있는 수니파 아랍 국가들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는 사우디와 카타르 간 20년 넘게 곪은 갈등이 터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갈등의 단초는 1995년 보수적인 부왕을 무혈 쿠데타로 폐위시키고 카타르 군주에 오른 셰이크 하마드 빈 칼리파 알사니 전(前) 국왕의 ‘야망’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아라비아반도 여섯 개 걸프왕국(사우디 쿠웨이트 UAE 카타르 오만 바레인)의 ‘맏형’ 역할을 자임하는 사우디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길 갈망했다. 사우디(214만9690㎢) 면적은 이웃한 카타르(1만1581㎢)의 185배에 달한다.

마크 린치 미국 조지워싱턴대 국제정치학과 교수는 “하마드 전 국왕의 외교 정책은 두 가지였다. 카타르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 그리고 사우디를 성가시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우디의 경쟁국으로 변신하는 것만이 국가 이익을 지킬 수 있는 길로 여겼다는 설명이다.

카타르는 각종 세계적인 행사를 유치하며 영향력을 키웠다. 2006년 아시안게임, 2012년 기후변화당사국회의를 열었으며 2022년엔 월드컵을 개최한다. 시리아·예멘 내전에서 사우디와 다른 편에 섰다. 이라크전쟁 당시 반미(反美) 감정탓에 사우디에서 쫓겨난 미국 공군을 재빠르게 자국에 받아들였다.

사우디와 카타르 관계는 2011년 이집트에서 일어난 ‘아랍의 봄’ 시위를 계기로 극도로 악화됐다. 카타르는 이집트의 반(反)정부 이슬람단체로 아랍권 왕정 타도에 나선 무슬림형제단을 뒤에서 지원하며 사우디와 각을 세웠다. 그동안 사우디 왕실의 치부를 보도해 ‘눈엣가시’였던 카타르의 알자지라 위성방송은 아랍의 봄 시위를 촉발한 튀니지 채소 장수의 분신 사건을 내보내며 시위 물결을 확산시켰다.

카타르의 무기는 LNG

카타르의 독자 행보가 가능한 것은 액화천연가스(LNG) 덕분이었다. 기술 발달로 천연가스를 액화시켜 수출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하마드가 왕위를 찬탈한 1995년은 카타르가 처음으로 LNG 수출선을 출항하려던 때다.

카타르가 천연가스에 집중하면서 원유 생산국인 사우디의 지배력으로부터 한발 떨어질 수 있었다. 대신 미국 이란 러시아와의 연결고리를 강화했다. 카타르 국부펀드는 지난해 러시아 국영 석유회사 로스네프트에 27억달러 투자를 결정했다. 짐 크레인 미 라이스대 베이커연구소 연구원은 “사우디 속국이던 카타르가 천연가스로 번 돈을 통해 독자적인 역할을 찾아갔다”고 설명했다.

세계 최대 LNG 수출국인 카타르는 세계 공급량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구매력평가(PPP) 환율 기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1995년 5만5000달러에서 13만달러(세계 1위)로 급증하며 사우디와 UAE를 제쳤다.

수니파와 시아파 갈등 고조

사우디 등의 단교 선언이 이란을 견제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핵 협상 타결로 경제 제재가 풀린 이란이 부상하고 있는 가운데 카타르가 공공연히 이란을 편들었기 때문이다. “이란이 테러를 지원한다”고 비난해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사우디를 방문한 직후 단교 선언이 이뤄진 점도 이 같은 해석을 거들고 있다.

페르시아만을 사이에 두고 있는 이란과 걸프국은 민족도 언어도 서로 다르다. 사우디와 이란은 각각 이슬람교 양대 종파인 수니파와 시아파의 맹주를 자임하며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다. 한 뿌리에서 갈라진 두 종파는 1400년 역사 동안 원수가 됐다. 전 세계 16억 무슬림 중 90%가 수니파, 10%가 시아파다.

사우디와 이란은 시리아와 예멘 내전에서 양극단에 서며 대리전을 치렀다. 지난해 초엔 사우디가 저명한 시아파 성직자를 처형한 이후 이란 시위대가 테헤란의 사우디 대사관에 불을 질렀다. 사우디는 이란과 단교했다.

새로운 중동 지형

사우디는 이번 단교로 카타르의 항복을 원했겠지만 상황은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터키 이란 모로코 등이 단교로 고립된 카타르에 식량을 지원하고 나섰다. 카타르의 주요 투자국인 터키는 최대 3000명의 터키군을 카타르에 배치할 수 있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카타르의 이란 터키에 대한 의존도만 되레 키우며 새로운 정치 지형을 만들고 있는 모양새다.

사우디 UAE 바레인은 2014년에도 카타르가 무슬림형제단을 지원한다는 이유로 자국 대사를 소환했다. 그땐 쿠웨이트 중재로 일단락됐지만 이번엔 조기 해결이 어려워 보인다. 사우디와 UAE의 군주가 전과 달리 젊고 공격적인 데다 카타르도 ‘항복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고 블룸버그통신은 분석했다.

전쟁 가능성은 현재로선 낮다. 시리아 및 이라크의 이슬람 무장세력(IS)과 전쟁을 수행해야 하는 미 공군 기지가 카타르에 있기 때문이다. 아랍 동맹국들이 무력을 행사한다면 카타르가 군사력으로 저항할 방법은 거의 없다. 물론 카타르는 천연가스라는 중요한 무기가 있다. UAE에 하루 약 20억입방피트(5662만㎥)의 가스를 공급한다. UAE 에너지 필요량의 약 30%에 해당한다.

안드레아스 크레이그 런던 킹스칼리지 국방학과 교수는 “사우디가 정말 원하는 건 1980년대로 돌아가는 것”이라며 “그땐 걸프국 사람들이 국적이 뭐든 메카 성지가 있는 사우디에 높은 충성심을 가졌다”고 말했다. 이어 “사우디는 통일된 대(對)이란 정책을 원하겠지만 걸프국은 통일 대신 분열이란 도박을 선택했다”고 진단했다.

허란 기자 wh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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