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늘해지는 워싱턴 정가
문정인 특보, 미국 우려 고조시켜
일각 '청와대의 떠보기' 해석도
[ 워싱턴=박수진 / 뉴욕=이심기 기자 ]
미국을 방문 중인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별보좌관의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와 한·미 동맹 관련 발언 후폭풍이 거세다. 오는 29~30일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간 첫 정상회담에서 사드 문제가 최우선 의제로 다뤄질 것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백악관 소식통은 18일(현지시간)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사드 문제가 최우선 의제로 다뤄질 것”이라며 “그다음이 북핵 대응이고 마지막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미 양측이 정상회담 의제를 조율 중인데 “문 특보 발언 이후 사드 배치 문제가 미국 측 최우선 의제로 부각됐다”고 덧붙였다.
연세대 특임명예교수인 문 특보는 지난 16일 한국 동아시아재단과 미국 우드로윌슨센터가 워싱턴DC에서 공동 주최한 세미나에서 기조연설 및 문답을 통해 “사드 한국 배치는 한국 내 법적 절차를 따라야 하며 환경영향평가에는 1년가량 소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사드 때문에 틀어지면 그게 무슨 동맹이냐” “북한이 핵·미사일 활동을 중단하면 미국의 한반도 전략자산과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축소할 수 있다”는 발언 등을 내놨다.
이 같은 문 특보의 발언은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의 발언과 배치된다. 정 실장은 지난 9일 “정부는 한·미 동맹 차원에서 약속한 내용을 근본적으로 바꾸려는 의도는 없다”며 “정권이 교체됐다고 해서 이 (사드 배치) 결정을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8일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과 사드 관련 회의를 하고 “한국이 조건 없이 사드를 수용하지 않으면 사드를 철수시킨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 국무부는 문 특보 발언 다음날 “문 특보의 개인적 견해로, 한국 정부의 공식적인 정책을 반영한 게 아닐 수 있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며 에둘러 우려를 나타냈다. 문 특보 발언을 놓고 청와대는 “개인 의견”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다양한 해석을 내놓고 있다. 한 관계자는 “문 특보가 문 대통령의 의중을 미국 측에 한 번 흘려본 뒤 그 반응을 보고 정상회담 발언 수위를 조절하려는 의도일 수 있다”고 관측했다.
한반도 전문가인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문 특보가 워싱턴을 방문한 것은 미국의 우려를 누그러뜨리기보다 오히려 고조시키는 것으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워싱턴=박수진/뉴욕=이심기 특파원 ps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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