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북한 정권 잔혹성 규탄"…언론·의회도 대북 강경론 들끓어
문재인 정부 대북 유화책 제동걸릴 듯…백악관 일각 "문재인 특보 조치 필요"
[ 워싱턴=박수진 기자 ]
북한에 억류됐다가 혼수 상태로 풀려난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22)의 사망으로 미국 내 대북 여론이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 미국 정치권과 언론은 강경대응을 요구하고 있다. 이 같은 분위기는 오는 29~30일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대북 전문가들은 “백악관의 대북 강경론에 그 어느 때보다 힘이 실리게 됐다”고 분석됐다.
◆들끓는 美 여론…“北이 웜비어 살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19일(현지시간) 웜비어의 사망을 보고받은 직후 공식 성명을 통해 “인생에서 부모가 자식을 잃는 것보다 더 비극적인 일은 없다”며 “미국은 다시 한 번 북한 정권의 잔혹성을 규탄한다”고 대북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도 “미국은 반드시 북한에 책임을 물을 것”이라며 “북한이 불법 구금 중인 나머지 3명의 미국인을 석방할 것을 요구한다”고 압박했다.
정치권에서는 더 강경한 목소리가 나왔다. 공화당 소속 존 매케인 상원 군사위원장은 “웜비어는 김정은 정권에 살해당했다”며 “미국은 적대 정권에 의한 자국 시민의 살해를 용인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뉴욕타임스(NYT)는 “그동안 북한에 억류됐던 여러 명의 미국인 가운데 혼수상태로 귀국한 것은 그가 처음“이라며 “그의 죽음은 이미 긴장 상태에 있는 미국과 북한의 관계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고 전망했다. NYT는 정부 소식통을 인용, 구타설을 제기하기도 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웜비어 사망은 미국의 대북 정책이 매우 민감한 시기에, 특히 21일 워싱턴DC에서 열리는 미·중 외교안보대화를 이틀 앞두고 벌어졌다”고 파장을 경계했다.
◆트럼프, 국내·대외 카드로 활용 가능성
미국은 웜비어 사망을 계기로 대북 압박을 강화할 전망이다. 국무부는 미·중 외교안보대화에서 중국 측에 대북제재 강화를 요구할 예정이라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수전 손튼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부차관보는 이날 브리핑에서 “우리는 모든 나라가 유엔 안보리 제재 이행을 통해 북한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는 행동을 취하도록 노력하고 있다”면서 “이것이 우리가 가장 집중하는 것이고, 이번주 중국과의 대화에서 초점을 맞추는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DC 국제안보분석연구소(IAGS)의 갤 루프트 이사는 미·중 외교안보대화와 관련, “중국은 미국이 북한 문제에 어느 정도까지 파고 들고 북한에 대한 군사적 옵션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는지 등을 평가하려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웜비어 사망은 열흘 앞으로 다가온 한·미 정상회담에도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대북정책과 관련해 미국은 ‘비핵화를 전제로 한 대화’를, 문재인 대통령은 ‘핵 프로그램 동결시 조건없는 대화’를 주장하며 입장차를 보이고 있다.
백악관 사정에 밝은 한 소식통은 “웜비어 사망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한에 대한 강경 대응을 통해 미국 내 여론을 대외정책 쪽으로 환기시키고 한국의 새 정부에도 북한 정권에 대한 섣부른 유화책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백악관 일각 “문 특보 조치 필요”
백악관 일각에서는 북한뿐 아니라 한국에 대해서도 강경 대응론이 제기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백악관 소식통은 “문정인 통일외교안보특보의 사드 및 한·미 연합훈련 축소 발언의 여파가 가시지 않고 있다”며 “일부에서는 한·미 정상회담 전에 한국 측에서 의미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문 특보는 지난 16일 워싱턴DC에서 핵 프로그램 동결 시 한·미 연합훈련 및 전략자산 축소,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연기 가능성 등을 언급했다.
워싱턴=박수진 특파원 psj@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