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 정권 14년간 두 번의 디폴트
우파 성향 마크리 대통령 집권 후 국가채무 상환 합의하며 신뢰 회복
신흥국 투자 열기에 수요 몰려…수익률은 예상보다 낮은 연 7.9%
[ 허란 기자 ]
2001년 국가부도를 선언했던 아르헨티나가 투자부적격(정크) 신용등급 국가 중 처음으로 100년 만기 국채를 발행했다. 지난해 4월 국제 금융시장에서 국채를 성공적으로 발행한 데 이어 ‘두 번째 홈런’을 친 셈이다. 새로 들어선 우파정권의 친(親)시장적 경제개혁 정책이 평가를 받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마크리 대통령 취임 이후 달라져
19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아르헨티나 정부는 100년 만기 달러표시 국채 27억5000만달러어치를 연 7.125% 쿠폰금리로 발행했다. 투자자들이 몰리면서 수익률은 당초 예상한 연 8.25%보다 낮은 연 7.9%로 결정됐다.
조달한 자금은 부채 상환과 예산 집행에 사용한다. 멕시코 아일랜드 벨기에 영국이 100년 만기 국채를 발행한 적은 있지만 국가신용등급이 정크 수준인 국가로는 아르헨티나가 처음이다.
루이스 카푸토 재무장관은 성명에서 “이번 채권 발행은 아르헨티나에 대한 투자자의 신뢰 회복과 미래 경제의 확신 덕분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아르헨티나는 좌파정권이 집권하던 2001년과 2014년 두 번 디폴트(채무 불이행)를 선언했다. 그 사이 국가신용등급은 정크 등급에서 헤어나오지 못했고 글로벌 국채발행 시장에서도 퇴출됐다.
투자자의 시각이 달라진 것은 2015년 12월 친기업 성향의 마우리시오 마크리 대통령이 취임하면서다. 그가 친시장 정책을 추진하고 채권자들과 채무상환에 합의하면서 아르헨티나 정부는 지난해 4월 15년 만에 국채(165억달러어치)를 발행할 수 있었다.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지난해 5월 아르헨티나의 신용등급을 선택적 디폴트에서 B-등급으로 올렸고, 다시 1년 만인 지난 4월4일 B등급으로 한 단계 상향 조정했다. 아담 보탐레이 HSBC 채권신디케이트 본부장은 “100년 만기 국채 발행은 투자자들이 아르헨티나의 정치 변화에 강력한 믿음을 표현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신흥국 채권 투자 열기도 뜨거워
아르헨티나의 연이은 국채 발행 성공은 신흥국 채권 투자에 대한 시장의 관심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데이터제공업체 딜로직에 따르면 올 1분기 신흥국 정부와 기업이 발행한 달러표시 채권 규모는 1790억달러로 1분기 기준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미국 등의 양적완화 통화정책에 따라 글로벌 유동성이 풍부해지면서 브라질 멕시코 인도네시아 등 신흥국 시장으로의 자금 유입이 커진 영향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의 금리인상 속도가 완만할 것으로 예상한 투자자들이 보다 높은 수익률을 찾아 신흥국 시장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 국채와 신흥국 국채 수익률 격차를 나타내는 블룸버그 신흥국 국채지수 신용스프레드는 2013년 수준(2.486%포인트)으로 떨어진 상태다. 스프레드가 낮을수록 신흥국 국채의 인기가 높다는 의미다.
브렛 디멘트 애버딘자산관리 이머징채권 본부장은 “신흥국이 발행한 100년 만기 채권 매입은 수익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1996년 발행된 중국의 10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현재 연 4.25% 정도다. 거래가 활발하진 않지만 유통시장 가격은 발행 당시보다 두 배 이상 뛰었다.
일각에서는 아르헨티나의 고질적인 포퓰리즘(대중인기 영합주의) 성향을 우려하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1816년 독립 이후 여덟 번의 국가부도를 선언했다. 마크리 대통령의 우파정책이 실패해 재집권하지 못할 경우 또다시 최악의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허란 기자 wh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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