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과 달리 국산화한 한국…'탈원전 부작용' 비교 어려워
[ 이태훈/서정환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내세운 ‘탈(脫)원전 정책’의 롤모델인 대만이 최근 원자력발전소 가동을 재개하면서 여당과 청와대가 난감한 상황에 빠졌다. 탈원전에 대한 비판이 있을 때마다 “대만도 하는데 우리가 왜 못 하느냐”고 응수했는데, 지금은 “잘못된 사례를 참고한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원전은 무조건 나쁜 것이라는 선입견으로 에너지 정책을 짜면 대만과 같은 정책 실패를 되풀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일 정치권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은 그동안 대만을 ‘탈원전 모범국’으로 규정하고 다음달 정부 관계자들과 함께 대만 방문을 추진했다. 하지만 대만이 최근 원전 정책을 바꾸자 방문 계획을 취소하고, 다음달 5~6일 대만 원전 전문가를 불러 세미나를 여는 것으로 대체하기로 했다.
대만은 지난해 5월 차이잉원 총통 취임 이후 아시아 국가 중 최초로 탈원전 정책을 시행했다. 대만에는 6기의 원전이 있는데, 1기만 남기고 단계적으로 가동을 중지했다.
하지만 대만 원자력위원회는 지난 9일과 12일 중지했던 원전 2기의 재가동을 연달아 승인했다. 여름철 무더위로 전력 수요가 늘어날 것이란 이유에서다. 6기 중 절반인 3기가 가동에 들어가며 탈원전 정책이 사실상 실패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더불어민주당뿐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 참모들 역시 탈원전 정책을 짜는 데 대만의 사례를 많이 참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만은 한국과 산업구조가 비슷하고, 이웃나라와 전력망이 연결되지 않은 ‘전력 섬’이라는 점도 유사하다.
문 대통령은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20%로 끌어올리겠다고 공약했다. 이는 “2025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비율을 20%로 올리겠다”는 차이잉원 대만 총통의 공약을 참고한 것이다. 두 나라 모두 현재 신재생에너지 비율은 4%대다.
공정률 28%인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이 공약에 들어간 것도 대만에서 따온 것이다. 대만은 심지어 공정률이 98%에 달해 준공을 눈앞에 둔 원전까지 건설을 중단시켰다.
하지만 대만이 이달 들어 돌연 원전 재가동을 결정하면서 청와대와 여당이 ‘멘붕(멘탈 붕괴)’에 빠졌다. 민주당 관계자는 “대만이 원전 재가동을 결정했지만 신규 원전을 짓지 않겠다는 방침에는 변화가 없는 것으로 안다”면서도 “김이 샌 측면이 없지 않다”고 했다.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대만은 원전을 대부분 미국 회사가 건설해 관련 기술과 산업이 발달하지 않았다”며 “원전 국산화를 이룬 한국은 탈원전이 주는 부작용이 대만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고 말했다. 주 교수는 “탈원전 정책은 대통령 임기 이후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국민에게 전기요금 인상 등에 관해 제대로 설명하고 동의를 구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태훈/서정환 기자 bej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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