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전속결 탈원전·탈석탄 정책 "비전문 극소수 NGO가 주도"
여당도 "지나치게 한쪽 방향"
[ 이태훈 기자 ]
“국가 백년대계(百年大計)를 내다보고 짜야 할 에너지 정책이 누구 손에서 만들어지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서울대 공과대학 J교수)
‘탈(脫)원전·탈석탄’을 내세우는 새 정부 에너지 정책의 ‘브레인’에 대한 궁금증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전국 23개 대학의 에너지 관련 학과 교수 230명이 지난 1일 “소수 비전문가가 속전속결하듯 에너지 정책을 주무르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한 데 이어 여권 내부에서도 “에너지 공약이 누구 손을 거친 것이냐”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는 22일 “에너지 정책은 중장기 수급을 면밀히 검토해 신중하게 결정해야 하는데 지나치게 한쪽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환경단체 등 시민단체 출신 주도로 공약을 짰기 때문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 대선 때 문재인 대통령 공약에 따라 노후 원전 수명연장 금지, 신규 원전 건설 백지화 등을 통해 ‘원전 제로시대’를 앞당기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중장기 전력 수급 계획이나 비용 상승 대책 없이 급하게 추진해 논란이 커지고 있다.
민주당에 따르면 대선 때 에너지 공약은 환경·반핵단체 출신인 이상훈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장과 김익중 동국대 의대 교수 등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9일 ‘고리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의 문 대통령 연설문도 뒤늦게 논란이 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일본의 탈원전을 언급하며 “일본은 세계에서 지진에 가장 잘 대비해 온 나라로 평가받았지만 2011년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로 5년간 1368명이 사망했다”고 말했다.
일본 산케이신문은 21일자에서 “일본 부흥청은 문 대통령이 언급한 1368명이 어떤 숫자를 인용한 것인지 몰라 당황하고 있다”고 전했다.
산케이는 “문재인 대통령이 언급한 1368명은 도쿄신문이 작년 3월 자체 집계한 원전 관련 사망자 수를 인용한 것 같다”고 했다. 도쿄신문이 집계한 사망자 수는 원전 사고로 피난을 갔다가 질병과 스트레스 등으로 숨진 사람들까지 포함한 것이다.
영국의 원자력 전문매체 월드뉴클리어뉴스도 지난 20일자에서 “한국 정부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지진이 아니라 쓰나미 때문에 발생했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다”고 보도했다. 월드뉴클리어뉴스는 세계원자력협회에서 발간하며 관련 학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매체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탈(脫)원전이라는 대통령의 기념비적 메시지가 담긴 연설문이 이렇게 허술하게 작성된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한 에너지 전문가는 “에너지정책 방향을 180도로 전환하는 중대한 연설문의 기초 데이터를 정확한 확인 절차도 없이 올렸다는 건 말이 안 된다”며 “에너지정책이 제대로 짜이는지 의심을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후쿠시마 원전 사태와 관련해 일본이나 국내 언론들이 보도한 내용을 참조했다”고 해명했다.
이날 대통령 연설문에는 오류가 또 있었다. 연설이 있기 전 언론에 미리 배포한 원고에는 “미세먼지 대책으로 30년 이상 운영된 노후 석탄화력발전소 6기 가동을 일시 중단했다”고 돼 있었다. 지난 5월15일 문 대통령 지시에 따라 6월 한 달간 가동을 중단한 석탄화력발전소는 6기가 아니라 8기다. 관계부처에 “왜 8기가 아니고 6기냐”는 기자들의 문의가 이어지자 청와대는 문 대통령이 연단에 오르기 직전 급하게 원고를 수정했다.
여권 내부에서조차 새 정부 에너지정책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 것은 이런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에너지 백년대계가 환경·반핵 운동가 중심으로 짜이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대선 때 에너지 공약을 주도한 이상훈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장과 김익중 동국대 교수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업무보고 과정에서 외부에 존재가 알려졌다. 국정기획위는 지난 2일 산업통상자원부 원자력안전위원회 한국수력원자력의 업무보고 때 두 사람을 배석시키며 “에너지 공약을 마련하는 데 관여했다”고 소개했다.
이 소장은 에너지 공약 수립 시 신재생에너지 분야에, 김 교수는 탈원전 쪽에 조언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소장은 환경운동가로 유명하고, 김 교수는 의대에서 미생물학을 가르치고 있다. 에너지정책을 국정과제로 구체화하는 역할을 맡은 국정기획위 경제2분과에도 에너지 전문가는 한 명도 없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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