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가장 부도덕한 전쟁’이라는 평가까지 받은 아편전쟁 직후 체결된 뒷수습이 난징(南京)조약이다. 1842년 8월 양국은 영국 군함 갑판에서 일방적인 내용의 조약에 서명하게 된다. “홍콩을 영국에 넘겨준다, 광저우, 샤먼, 푸저우, 닝보, 상하이 5개 항구도시를 개항한다 …”는 난징조약은 ‘매우 불평등한 근대조약’으로 세계 외교사에 기록돼 있다.
열자(列子)의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랄까. 1990년대 덩샤오핑의 외교전략이던 ‘도광양회(韜光養晦)’의 결실이라고 할까. 1997년 7월1일, 중국은 155년 만에 홍콩을 반환받았다. 중국 개혁·개방의 총지휘자 덩샤오핑은 1980년대 홍콩반환 협상에서 ‘일국양제(一國兩制: 한 국가 두 체제)’를 내세워 마거릿 대처 당시 영국 총리를 끈질기게 설득했다.
1984년 말의 ‘중·영 연합성명’에 따라 홍콩은 2047년까지 ‘고도의 자치’를 보장받고 있다. ‘항인치항(港人治港: 홍콩인이 홍콩을 다스린다)’ 원칙으로 국방과 외교를 제외한 행정·입법·사법의 자치권이 홍콩에 주어졌다. 이때 나온 장쩌민의 유명한 언급이 ‘정수불범하수(井水不犯河水: 우물물은 강물을 침범하지 못한다)’라는 중국의 관용구다. 물론 우물물은 홍콩, 강물은 중국 본토다.
홍콩 반환 20주년을 맞아 시진핑 국가주석 부부가 오는 29일부터 사흘간 홍콩을 방문한다고 관영 신화통신이 어제 보도했다. 2013년 국가주석이 된 뒤 첫 홍콩행인데, 홍콩에 썰렁한 반응이 많다고 한다. 2014년 가을 행정장관 직선제를 요구하며 79일간이나 이어졌던 ‘우산혁명’의 여진이 아직 남아있는 것일까. 당시 중문대에서 시작된 민주화 요구 시위대가 우산으로 경찰 최루탄에 맞섰다고 해서 서방언론들은 ‘우산혁명’이라고 불렀다.
반환 20년, 홍콩의 경제성적표는 나쁘지 않다. 1997년 2만7000달러였던 1인당 GDP(국내총생산)가 지난해 4만4000달러가 됐다. 근래 둔화되고는 있지만 연평균 성장률은 3.3%, 실업률도 최근 3.3% 선으로 나쁘지가 않다. 어디서나 양극화는 문제다. 세계 최고수준인 집값과 임대료 때문에 젊은 층의 고충이 특히 커졌다. 반환 20년 행사에서 나올 ‘시진핑 메시지’가 무엇일지 궁금하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