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규호 기자 ] 도종환 신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문학동네 여름호에 신작 시 두 편을 실었다. 작년에도 시집 《사월바다》를 낸 시인이니 대수는 아니다. 다만 장관이 된 다음에 발표된 시여서 관심을 모았다.
개인적으로는 두 편 중 ‘신단양’이란 시에서 눈이 떨어지지 않는다. 도 장관에게는 지금은 세상에 없는, 시인이자 동지였던 벗이 있었던 것 같다. 그를 회상하며 정치인이 된 자신의 심경을 시어로 풀어냈다. 신임 장관의 가장 최근 생각을 엿볼 수 있기에 짧게 소개해본다.
‘(…)네가 꿈꾸던 꽃보다 아름다운 세상은/아직도 오지 않아서/나는 미세먼지 속에서 목이 터지도록/균등하고 의로운 나라 만들자고 유세를 하고/시장을 돈다(…)’
‘(…)네가 남긴 어린 새끼들이/서른이 넘은 어른으로 자라는 동안에도/세상은 네가 꿈꾸는 세상이 되지 못하였다(…)’
‘(…)민주주의는 사람을 오래 만지작거리며 망가뜨리는 데/익숙해 있다는 걸 이제 너도 알았을까(…)’
긍정평가 필요한 민주화 30년
지난 대선을 치르며 그의 가슴속에 일었던 격정과 회한이 느껴지는 시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출신으로 개혁 성향이 강한 도 장관이기에 예상했던 바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30년이 흐르고도 꿈꾸는 세상이 되지 못했다거나 민주주의는 사람을 망가뜨린다는 인식 앞에선 솔직히 숨이 턱하니 막힌다. ‘조급증에 빠진 사회운동가’의 전형적인 역사인식이 이런 게 아닌가 싶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리는 동력이 어디서 만들어지고, 얼마나 많은 시간 그 힘이 축적돼야 하는지 이미 많은 한국민들이 지켜봐 왔는데도 말이다.
헌정사 최초의 대통령 탄핵과 조기 대선 사건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30년 전 ‘6월 민주항쟁’이 밑거름이 됐다는 생각이다. 그해 12월 대선에서 민주정권 교체에는 실패했지만 당시 젊은이들의 역사인식과 개혁 열망은 이후 사회 곳곳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소중한 밀알이 됐다. 이제는 사회의 중추인 50대가 돼 더 큰 지렛대를 갖게 됐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지난 30년 민주화 과정에 굴곡은 있었지만 이런 점에서 ‘아직도 (꿈꾸는 세상이) 오지 않아 안타깝다’는 데에는 쉽게 동의할 수 없다. 좀 더 긍정적으로 평가받아 마땅한 시간들이다. 제왕적 대통령 등 문제를 낳은 ‘87체제’도 향후 개헌 논의와 협상을 통해 충분히 개선될 여지가 있다. 단 한 번에 모순의 뿌리를 잘라낼 수 없고, 거꾸로 진보를 향한 역사의 물줄기를 되돌릴 수도 없지 않은가.
부정하고 싶은 과거에 집착?
도 장관은 인사청문회 때부터 문화계 블랙리스트 진상 조사를 다시 철저히 하겠다고 공언했다. 장관 취임식에서는 문화인들까지 참여시키는 진상 조사위를 꾸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관련자들이 기소돼 공판이 진행 중인데 진상 조사를 다시 한다니 의아해질 법도 하다. 사법적 제재를 받아야 할 죄와는 별도로 블랙리스트와 관련된 문체부 정책 과정의 문제점을 찾는 목적이라면 수긍할 만하다. 하지만 뭔가 밝혀지지 않은 진실이 있을 것이라 먼저 재단하고 블랙리스트 피해자들의 원을 풀어주는 게 주목적이 된다면 곤란하다.
4차 산업혁명 전쟁이 벌어지는 현장에서 우리 문화산업의 경쟁력을 높여 내고 순수문화 발전을 앞장서 이끌어야 할 문화 정책 수장이 ‘부정하고픈 과거’에만 집중하고 있는 게 아닌지 걱정스럽다. 카를 마르크스는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은 처음엔 ‘비극’으로, 다음엔 ‘희극’으로 두 번 반복된다고 했다. 1980년대 독재의 그림자(비극)가 지금은 민주주의 회복의 국민적 열망(희극)으로 승화됐다고 보는 역사인식이 필요하지 않을까.
장규호 문화부장 daniel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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