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군중과 반대로 행동하는 것을 역발상이라 생각하기 쉽다. 군중의 판단은 대부분 빗나가므로 반대로 하면 성공한다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맞을 때도 있지만 틀릴 때도 많다. 주가가 늘 군중의 예상과 반대로 흘러가지는 않기 때문이다. 반대로 행동하는 사람들 역시 사고방식이 군중과 같기는 마찬가지다.
실제로 시장은 군중과 역발상 투자자가 대결하는 구도가 아니다. 시장은 주류 군중, 그 반대로 행동하는 비주류 군중, 독자적으로 생각하는 진정한 역발상 투자자로 구성된다. 진정한 역발상 투자자는 양쪽 군중의 생각을 들여다보고 독자적으로 결론을 내린다. 역발상 투자의 핵심은 독자적 사고에 있다. 과장보도에 휩쓸리지 않으면서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경험법칙이나 여론에 끌려가지 말아야 한다.
판단이 완벽해야 투자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빗나갈 때보다 적중할 때가 더 많으면 성공한다. 역발상 투자자도 항상 옳을 수는 없다. 노련한 투자자조차 판단의 30~40%는 틀린다. 그렇다면 어떻게 적중률을 높일 수 있을까? 켄 피셔는 시장은 군중이 예상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할 것을 거듭 강조하면서, 소음을 무시하고 세상을 군중과 다른 각도로 볼 것을 주문한다.
이 책은 주먹구구식 계산, 대중매체의 과장보도, 금융업계의 통념에 염증을 느끼는 투자자들에게 켄 피셔가 제공하는 일종의 두뇌훈련 지침서다. 독자들은 대중매체의 과장보도로부터 두뇌를 보호하고 군중보다 한 수 앞서가는 원칙을 배울 수 있다. 한편으로 켄 피셔가 지난 40년 동안 자산을 운영하면서 실수를 줄이고 승률을 높여온 비법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다른 방향이지 반대 방향이 아니다
사람들은 왜 대부분 투자에 실패할까. 지식이 부족해서도 아니고 지능이 부족해서도 아니다. 똑똑한 사람들도 종종 형편없는 판단을 내린다. 대부분 한 가지 이유 때문이다. 무심코 시장여론에 끌려가는 것이다. 사람들은 투자를 일종의 학문이나 기술이나 과학처럼 생각하지만 실제로 사용하는 기법은 일반 통념에 불과할 때가 많다. 통념을 바탕으로 호재인지 악재인지 판단하고 매매 시점을 선택한다.
그렇다면 진정한 역발상 투자는 무엇일까. 사람들이 시장에서 어떤 사건이 일어난다고 믿으면 역발상 투자자는 그와 다른 사건이 일어난다고 믿는다. 이때 반대 사건이 아니라 다른 사건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시장은 군중이 인식하는 정보를 오늘 주가에 모두 반영한다. 모두가 악재를 목격했다면 비관할 필요는 없다. 모두가 악재를 보는 순간 그 악재는 TV와 인터넷으로 퍼져나가면서 주가에 반영됐기 때문이다.
역발상 투자자들은 움직이지 말아야 할 시점도 알고 가지 말아야 할 곳도 안다. 어떻게 알까? 시장이 대체로 효율적임을 알기 때문이다. 시장은 단기적으로는 매우 비효율적이지만 장기적으로는 공개 정보가 모두 주가에 반영된다. 투자자들이 공개 정보를 이용해 매매하기 때문이다. 시장이 공개 정보를 반영하는 방식을 이해하면 가능성 범위를 좁힐 수 있다.
켄 피셔는 발생할 일을 알 수는 없지만 거의 발생하지 않을 일을 알면 유력한 대안을 숙고해 승률을 높일 수 있음을 지적한다. 가능성 범위를 좁히기 위해 역발상 투자자는 주류 군중과 비주류 군중이 무시하는 대안도 조사한다. 아니면 똑같은 대안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본다. 이렇게 군중이 놓치는 위험과 기회를 발견할 수 있다.
30개월 안에 일어날 사건인가?
당장 경제 뉴스를 살펴보자. 부채가 과도하고, 사회가 엉망이 되어 파산한다는 내용이다. 이처럼 대중매체가 장기 전망에 집착하는 행태를 켄 피셔는 ‘코앞의 흡혈귀’라고 부른다. 당장에라도 흡혈귀가 달려들 것처럼 겁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과장보도에 귀 기울 필요가 없다. 시장은 초단기 과제는 이미 처리했고 초장기 과제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2년 뒤의 미래를 알 수 있을까? 시장도 마찬가지다. 시장의 먼 미래를 지금은 알 수 없다. 추측해야 할 변화가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주식시장도 이 사실을 알기 때문에 30개월 이상은 내다보지 않는다. 30개월을 넘어가면 순전히 어림짐작이어서 확률이 아니라 가능성에 불과하다고 보는 것이다. 가능성은 주식 시장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그런데도 뉴스들은 천천히 진행되는 초장기 추세들을 계속 주목하면서 결국 우리가 파멸을 맞이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과도한 부채, 중국의 세계패권국 부상, 지구온난화 등이 그런 사례다. 전문가들은 학자들이 세운 가정을 사실로 받아들여 끝없이 과장 보도한다. 더 나아가 이 불길한 장기 추세가 가까운 장래에 주식시장을 파멸시킬 수 있다고 경고하는 전문가도 많다.
그러나 우리는 간단한 기법을 이용해 먼 장래에 관한 이런 무의미한 주장들을 무시할 수 있다. 단지 이 사안이 “30개월 안에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나요?”라고 물어보면 된다. 대중매체가 경고하는 위험이 아무리 크고 끔찍하더라도 30개월 안에 일어날 사건이 아니라면 주식시장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 사건이 먼 장래에 마침내 일어나더라도 말이다. 주식시장은 그렇게 멀리 내다보는 법이 없다.
방 안의 코끼리를 조심하라
진정한 역발상 투자자는 장기 전망이 아니라 남들이 놓치고 있는 것에 주목한다. 켄 피셔는 이를 ‘방 안의 코끼리’로 지칭한다. 항상 그곳에 있지만 보이지 않는 사물을 가리키는 말이다. 코끼리가 방에 있다면 이는 대단한 사건이다. 방에서 코끼리를 처음 본다면 누구나 깜짝 놀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점차 코끼리에 익숙해지고 그렇게 잊어버리게 된다.
코끼리는 회색이라서 눈에도 잘 띄지 않는다. 곁을 지나치면서도 못 볼 수 있다. 그러나 코끼리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깜짝 놀란다. 시장도 마찬가지다. 투자자들이 어떤 기법이나 위험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을 때는 놀랄 일이 좀처럼 발생하지 않는다. 시장은 장기 환경에 불과해서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그러나 시장의 존재를 잊는 순간 시장은 다시 사람들에게 강펀치를 날린다.
모두가 체험했고 한때 두려워하거나 사랑했으며 이후 잊어버린 것, 이것이 방 안의 코끼리다. 사람들이 잊어버린 지식은 뻔한 사실이지만 가격에 반영되지 않았다. 한때 널리 알려진 사실이므로 이론상으로는 반영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이제는 잊혔고 보이지도 않아서 반영되지 않았다. 인간의 기억력이 형편없는 탓에 코끼리가 힘을 얻는 것이다.
켄 피셔는 코끼리 가운데 하나로 과거에 각광받았지만 지금은 인기를 잃은 총영업이익률(매출에서 매출 원가를 차감한 금액을 매출로 나눈 비율)을 꼽는다. 과거 기업의 상세한 실적 데이터를 입수하기가 쉽지 않던 시절에는 총영업이익률은 대단히 인기 있는 지표였다. 그러나 요즘 투자자들은 정보 과부하 상태다. 데이터가 늘어날수록 세부 사항에 발목 잡혀 코끼리를 보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감정과 편견을 통제하라
외부의 소음을 차단하고 코끼리에 주목하는 것으로 완벽해질 수 있을까?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투자에서 최대의 적은 자기 자신, 바로 감정과 편견이다. 켄 피셔는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행동재무학을 제시한다. 행동재무학을 이용하면 우리가 감정과 편견에 빠져 실수하는 과정을 파악할 수 있고, 마음속에 내재하는 투기본능을 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니얼 카너먼의 유명한 실험에서 사람들은 손실을 피할 확률을 조금이라도 확보하려고 손실 가능 금액을 키웠다. 돈을 벌 때 느끼는 기쁨보다 돈을 벌지 못할 때 느끼는 고통이 더 크다는 뜻이다. 사람들이 돈을 잃을 때 느끼는 고통은 같은 금액을 벌 때 느끼는 기쁨보다 2.5배나 크다고 한다. 바로 이 차이가 사람들이 실수를 저지르는 핵심 요인이다.
주가가 하락하면 사람들은 추가 손실을 회피하려고 헐값에 주식을 판다. 전망이론은 주식의 변동성이 클 때, 장기적으로는 주식을 계속 보유하는 편이 유리한데도 사람들이 주식을 서둘러 파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최근에는 이렇게 비합리적인 투자자들을 이용하면 초과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사고방식이 등장했다. 군중심리에 의해 가격이 왜곡되면 이를 이용해서 초과수익을 얻으려는 것이다.
켄 피셔는 행동재무학의 초점이 ‘자기 통제’에서 ‘초과수익 획득’으로 바뀐 듯하다고 꼬집는다. 행동재무학의 본래 목적은 자신의 인지적 오류를 파악해서 실수를 방지하는 것이지, 남들의 실수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행동재무학의 최신 기법들은 실제로 투자 실력을 높여주는 것은 아니라고 단언한다. 유행하는 최신 기법보다 자기통제가 훨씬 더 유용하다며 투자자들의 현명한 판단을 당부한다.
한경닷컴 뉴스룸 o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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