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고마운 장마

입력 2017-07-03 18:01  

이효성 < 성균관대 명예교수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 hslee5151@hanmail.net >


올해는 봄부터 6월 말까지 지나치게 가물었다. 장마마저 제때를 넘겨도 도통 소식이 없어 농부들의 애를 태웠다. 그런 장마가 드디어 시작됐다. 최근 남부지방에 이어 중부지방에서도 상당한 장맛비가 내렸다. 과거에 한반도에서는 장마철이 비교적 뚜렷했다. 대체로 6월 하순 어간부터 약 한 달 동안 계속됐다. 그래서 “하지 지나 열흘이면 구름장마다 비다”는 말이 있었다.

장마 기간에는 한랭다습한 한대성 고기압인 오호츠크해 기단(氣團)이 지배하던 한반도에 남중국해에서 발생한 고온다습한 열대성 고기압인 북태평양 기단이 밀려와 부딪히는 곳에서 장마전선을 형성한다. 장마전선이 두 고기압의 힘의 강약에 따라 한반도를 오르내리면서 곳곳에 장맛비를 뿌린다. 그런데 이런 장맛비는 벼농사에 필수불가결한 존재다.

벼는 물을 좋아한다. 모내기를 한 논에는 물이 차 있어야만 한다. “하지를 지나면 발을 물꼬에 담그고 잔다”고 할 정도로 논에 물을 대는 일이 중요하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한반도에서 연간 강수량의 25~50%를 차지하는 장마전선과 관련된 비가 모내기 직후나 적기인 하지 어간에 시작된다는 사실은 벼농사를 위해서는 하나의 축복이라고 할 수 있다.

반대로 이때 장마가 시작되지 않거나 마른장마가 계속되면 벼농사에 큰 지장을 초래한다.

오늘날은 모내기가 기계화됨에 따라 모내기 시기도 상당히 빨라졌다. 보통 5월 하순에 모내기가 시작된다. 그러나 과거 이모작을 많이 하던 시절에 보리를 베고 벼를 심는 이모작 지대에서는 ‘하지 전 삼일, 후 삼일’이라 해서 이때를 모내기 적기로 여겼다. 그런데 지금은 하지(6월21일)로부터 이미 열흘 이상 지난 시점이므로 모내기의 적기가 조금 지난 것은 사실이다. 늦어도 소서(7월7일)까지만 모내기를 마치면 벼농사에 큰 지장은 없다. 그래서 “소서 때는 새 각시도 모 심어라”는 속담이 생겼다.

벼농사를 위해 이렇게 많은 비가 필요했기에 하지까지도 비가 오지 않으면 옛날에는 기우제(祈雨祭)를 올려 비가 오기를 기원했다. 다행히 남부지방에서부터 시작된 장마전선이 중부지방까지 오르내리면서 전국 어디서나 모내기에 충분한 장맛비가 내린 것으로 보인다.

장마는 습도를 높여 여름 날씨를 후텁지근하게 만들고 때로 홍수 피해를 일으키지만, 그동안의 극심한 가뭄으로 새삼 장맛비의 고마움을 깨닫게 된다.

이효성 < 성균관대 명예교수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 hslee5151@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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