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시대 일자리 만들기 전략
기업이 돈 풀수 있는 무대 만들어야 새 일자리 생겨
최저임금 높이려면 중소기업에 세금 혜택 등 반대급부 필요
노동시장 제도적 틀에 갇혀 일자리 새 패러다임 못 좇아가
[ 김은정 기자 ]
“전일제(풀타임) 정규직 중심의 사회·고용안전망으론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일자리 창출이 불가능하다.”(이인재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전 한국노동연구원장)
“기업이 돈을 풀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줘야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난다.”(이수성 롤랜드버거 서울사무소 대표)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의 핵심 키워드 중 하나인 4차 산업혁명을 양질의 일자리 창출과 연결하려면 경직적·획일적인 노동시장을 혁파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인공지능(AI)과 로봇이 중심에 선 4차 산업혁명이 기존 근로 형태와 직업 개념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고 있는데 한국은 여전히 정규직화, 최저임금 인상 논의 등 노동시장의 제도적 틀에 갇혀 일자리 패러다임 변화에 뒤처져 있다는 얘기다.
중견 학자와 신(新)산업 전문가가 주축이 돼 설립한 민간 싱크탱크 FROM 100과 한국경제신문사가 지난 4일 서울 광화문 한국생산성본부 대강당에서 연 ‘새 정부의 정책 과제’ 토론회에선 AI가 바꿀 노동시장과 새 정부의 일자리 정책에 대한 제언이 쏟아졌다. 참석자들은 “일자리 정책은 성장·교육·복지·재정이 얽혀 있는 복합적인 문제인데 새 정부는 근시안적으로만 접근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노동 제도에 발목 잡힌 미래 일자리”
문재인 정부는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는 생태계 조성을 중점 정책 과제로 선정했다. 다음달에는 4차 산업혁명위원회를 대통령 직속으로 설치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선 AI·로봇이 단순 반복적인 업무는 대체할 것으로 전망한다. 빅데이터 기술 등을 활용해 규칙화할 수 있는 일자리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날 참석자들은 다른 분석을 내놨다. “4차 산업혁명이 일자리의 의미와 수요를 변화시킬 뿐이지 절대적인 일자리를 없애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박가열 한국고용정보원 연구위원은 “창조와 감성에 기반하거나 핵심 기술을 산업·업무 등에 접목하는 전문직은 오히려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며 “드론 등 특정 신사업이 등장하면 연관 창출되는 일자리 수만 수십만 개에 달해, 결국 중요한 건 생산성을 끌어올릴 수 있는 일자리”라고 강조했다.
국가 경제가 성장해야 일자리가 늘어날 수 있는 만큼 일정 기간 특정 일자리만 늘리는 정책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박철성 한양대 경제금융대 교수는 “미래 일자리는 유연한 업무 환경, 기업·직장이 아닌 직무 중심, 자가 고용과 창조 서비스업 증가로 이동할 전망”이라며 “지금처럼 노동조합의 보호를 받는 정규직 근로자 중심의 사회 제도 아래에선 4차 산업혁명에 부합하는 일자리 신규 창출이 어렵다”고 꼬집었다.
◆“교육 시스템 개혁은 필수적”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일자리 창출은 자연스럽게 교육 시스템 개혁에 대한 논의로 이어졌다. 4차 산업혁명에 적합한 인재 조건은 소통·협업·비판 능력과 창의성인데 현재 대학 교육 체계에선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수요자가 아닌 공급자 중심의 교육 시스템을 갈아엎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왔다.
한순구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앞으로는 안정적으로 일자리를 유지하는 게 아니라 일자리가 바뀌더라도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며 “이를 위한 가장 기본이 바로 평생 교육과 훈련, 직무 중심의 교육”이라고 말했다.
◆“과도한 공포 아닌 체계적인 준비가 필수”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과도한 공포보다는 단계적이고 체계적인 준비가 현실적이라는 조언도 이어졌다. 새 정부의 일자리 정책이 대중적이고 급진적이라는 우려도 많았다. 최저임금 1만원 공약에 대한 염려가 특히 많았다.
독일 컨설팅 기업 롤랜드버거의 이수성 서울사무소 대표는 “4차 산업혁명이 본격화하면 노동 비용을 높이는 일자리 정책의 부작용이 심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프랑스 등 해외 사례를 볼 때 최저임금 인상 등 저숙련 근로자를 위한 정책은 결국 일자리 파괴로 이어졌다는 논리다.
이 대표는 “노동 비용이 높아졌을 때 저숙련 근로자를 기계로 대체하는 게 기업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라며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최저임금 1만원 도입 시기를 달리하는 것뿐만 아니라 중소기업의 경우 점차 최저임금 수준을 높여나가는 단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각종 요율 조정에 따른 세제 혜택과 근로 시간 및 임금 체계의 유연성 등을 보장해줘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기업 부담을 상쇄할 수 있는 반대급부도 동시에 주어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 FROM 100은
한국 대표 지식인 100여 명으로 구성된 민간 싱크탱크다. FROM 100은 미래(future), 위험(risk), 기회(opportunity), 행동(movement)의 머리글자에 100인으로 구성됐다는 의미의 숫자 100을 붙였다. 정갑영 전 연세대 총장(FROM 100 대표) 주도로 2016년 10월 출범했다. 연구력이 왕성한 중견 학자와 신(新)산업 부문 젊은 지식인이 주축이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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