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네이버 FARM] 돼지를 6개월 아닌 열 살까지 키우는 '이천 돼지 아빠'

입력 2017-07-06 15:43   수정 2017-07-06 16:23


돼지의 수명은 몇 살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두가지가 있다. 첫번째는 6개월이다. 통상 한국에서 돼지가 태어나 식용으로 전환되기까지 걸리는 기간이다. 두번째 대답은 열 살이다. 돼지가 도축되지 않고 자연스럽게 수명을 다할 경우다. 상황에 따라 일찍 죽기도 하지만 최장 17세까지 살기도 한다는 게 축산 농부들의 설명이다.

국내에서 자라는 돼지들은 대부분 6개월간의 짧은 생을 산다. 안타깝지만 현실이다. 채식주의자나 동물보호단체들은 이를 문제삼기도 한다. 국내에서도 돼지가 열 살까지 사는 농장이 있다. 경기 이천에서 ‘돼지들의 아빠’로 불리는 이종영 촌장(51)이 운영하는 ‘돼지보러오면돼지’ 농장 얘기다. 이곳에선 100여마리의 돼지가 자라고 있다.

◆자유롭게 공연하는 돼지들

물론 식용 돼지가 아니다. 공연을 한다. 돼지보러오면돼지는 돼지박물관 겸 공연장이다. 매일 9시부터 2시간 간격으로 해피, 카리스마, 힘순이, 꿀순이 등 훈련된 미니돼지들이 다양한 공연을 선보인다. 장애물 뛰어넘기는 기본이고, 고리넣기와 축구, 볼링도 한다.

식용으로 사육하는 것과 고통을 주면서 훈련시키는 것이 비슷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이 촌장은 그런 일은 없다고 못박았다. 그는 “이곳은 돼지가 주인공인 곳”이라며 “돼지의 의사를 우선한다”고 말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할까. 이 촌장은 “돼지들은 자신을 아프게한 사람을 알아보고 절대 말을 듣지 않는다”고 했다. 아기돼지 때 질병을 막기 위해 예방 주사를 놓는데 그 아픔을 기억하고 2주간 사람을 피한단다. 때리거나 아픔을 주는 방식으로 훈련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촌장의 훈련방법은 철저한 인센티브 방식이다. 장애물을 잘 넘으면 과자를 주는 식이다.

휴식과 휴가도 자유롭다. 돼지들의 공연 시간은 돼지가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인 15분을 넘기지 않는다. 15분이 넘어가면 어차피 말을 안 듣는다. 쉬게 둘 수 밖에 없다. 이 촌장은 “돼지의 아이큐는 75~85 정도”라며 “3~4세 어린이를 대하듯 해야한다”고 말했다.

돼지가 발정기에 있거나 몸 상태가 좋지 않아 공연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땐 돼지가 말을 안 듣는 게 공연 주제가 된단다. 이 촌장이나 공연 진행자가 무대에 같이 올라 “오늘 이 돼지는 남자친구를 만나러 가고 싶어서 아무것도 안 한다”고 말하며 돼지를 그대로 둔다.

◆공장형 축산가에서 돼지 애호가로 변신


이 촌장은 대학에서 축산을 전공한 후 줄곧 돼지를 키우는 일에 몸담았다. 23년전 입사한 첫 직장은 어미돼지를 사육하는 종돈장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우수한 어미돼지를 키우는 연구를 했다. 1996년에는 직접 돼지인공수정센터를 창업했다. 우수한 씨돼지의 정액을 찾아다니는 게 그의 업무였다. 그가 댄 정액들은 고품질의 식용 돼지의 원천이 됐다.

“지금도 크게 달라지진 않았지만 예전에는 양돈업이 혐오산업이었어요. 돼지는 탐욕의 상징이었고 돼지축사는 더럽다는 인식이 많았습니다.”

이 촌장은 인공수정에 대해 더 자세히 배우기 위해 찾은 영국과 독일 등 해외의 양돈장에서 이같은 인식을 바꿀 수 있는 실마리를 봤다. “해외의 양돈장은 상당히 깨끗하고 쾌적하더라고요. 주변에서도 양돈장을 혐오시설로 인식하고 있지 않았고요. 왜 그럴까 생각했는데 농장의 역사를 주변사람들과 공유하고 있는 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유럽의 농장 역사는 생각보다 자세했다. ‘아버지대에 있었던 농장의 대소사’, ‘이 농장의 첫 돼지’ 등에 대한 기록이 있었다. 독일에는 세계 유일의 돼지박물관도 있었다. 박물관을 관람한 후 이 촌장은 ‘나도 돼지에 대한 인식을 바꿀 수 있는 박물관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후 이 촌장은 해외 출장을 갈 때마다 돼지와 관련된 수집품을 사들였다. 멕시코를 여행했을 때 길을 잘못 들어서 군인들의 불시 검문을 받고 돈과 짐을 빼앗겼을 때도 돼지 조각상은 지켰다고 했다. 그렇게 모은 조각상과 인형, 그림 등이 6800점에 달한다.

이 촌장은 2011년 수년간 모은 수집품을 전시하는 박물관을 열었다. 미니돼지를 키워 공연도 시작했다. 1년만에 유료관객 2만명을 돌파했다. 지난해에는 6만5000명이 찾아왔다. 단체관람하는 학생들과 가족단위 방문객이 각각 2만5000명이었다. 외국에서도 찾아왔다. 중국과 대만, 싱가포르 등에서 찾아오는 외국 관광객이 1만5000명 정도였다.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는 게 아니에요

돼지를 위해 공연스케줄을 짜고, 돼지와 함께 살아가는 이 촌장은 돼지고기를 먹을까. 먹는다. 맛있게 먹는다. 돼지박물관에서도 돼지고기를 활용한 소시지 만들기 체험 프로그램이 있다. 올해 여름부터는 돼지고기 바비큐, 돈가스 등을 판매하는 레스토랑도 운영할 계획이다.

이 촌장은 “돼지를 사랑하며 함께 살아가는 것과 돼지고기를 먹는 것은 양립할 수 있는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대신 고마움을 충분히 알고 먹어달라고 했다. “돼지 한 마리가 죽으면 고기를 비롯해 185가지 제품으로 활용됩니다. 고마운 거죠. 사람들을 위해 6개월만에 죽어서 이렇게 많은 도움을 주니까요. 박물관에 오는 어린 학생들에게 이 점을 특히 강조합니다.”
이 촌장은 대신 행복하게 자란 건강한 고기를 먹으라고 당부했다.‘뜨거운 감자’인 동물복지 얘기다. 돼지보러오면돼지에서 먹거리로 사용하는 돼지고기는 모두 성지농장 등 동물복지 농장에서 공급받는 것이다. 이 촌장을 비롯한 동물복지 농장주들이 협동조합을 만들어 함께 사업을 키우고 있다.

이 촌장은 소비자들의 인식이 바뀌어야 생산자들도 변한다고 강조했다. “국내에 동물복지 농장은 10개 남짓입니다. 이게 많이 늘어나지 않는 이유는 단순해요. 수요와 공급의 문제에요. 동물복지 농장을 운영하면 일반 축사에 비해 생산비가 20%는 더 들어요. 소비자들이 동물복지 돼지고기에 더 비싼 값을 지불할 의사가 있다면 그렇게 안 키울 이유가 없어요. 그런데 그게 어려워요."

이 촌장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도 있다고 했다. 소비자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는 것이다. 충북 음성 자연목장을 예로 들었다. ”자연목장은 들판에서 풀을 먹고 자란 돼지로 만든 고기를 판매합니다. 특정 부위만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1.8kg에 5만원을 받는데 이게 인터넷에 올라가면 바로 완판이 됩니다. 이런 사례가 계속 늘어나면 생산자들도 생각을 바꾸겠지요.“

◆한국의 모쿠모쿠 꿈꾼다

일본 북부 미에(三重)현 이가(伊賀)시에 있는 모쿠모쿠는 일본에서 성공한 체험농장의 대명사로 통한다. 체험농장 몇 군데를 다녀보니 다들 농장의 미래로 모쿠모쿠를 꼽았다. 이 촌장도 그랬다. ‘한국의 모쿠모쿠’, 돼지보러오면돼지가 꿈꾸는 미래다. 이 촌장은 돼지와 말, 곤충과 다양한 교육 콘텐츠를 결합한 종합 체험농장을 구상하고 있다. 이 촌장은 이미 8800평 가량의 공간을 마련했다.

자연과 동물을 통한 치유도 그의 관심사다. 공연장 옆에 조성한 숲의 이름도 ‘치유의 숲’으로 지었다. 자연에서 동물과 함게 노닐며 심리적인 치유를 할 수 있는 시간을 주겠다는 취지에서다. 이 촌장은 현재 동물매개치료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해외에서도 이 촌장의 돼지보러오면돼지에 대해 관심이 많다. 중국에서는 작년 10월 이 촌장의 돼지박물관을 본딴 새로운 박물관을 만들었다. 독일에 있는 박물관과 이천에 있는 돼지보러오면돼지에 이어 돼지를 주제로 한 세계 세 번째 박물관이다. 이 촌장은 박물관의 전반적인 컨설팅을 해주고, 전시품도 대여해줬다. 중국에서는 이 촌장에게 로얄티를 지급한다.
“돼지공연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공연입니다. 돼지를 보러 온 관람객도, 교육하는 우리 직원들도, 그리고 주인공인 돼지도 모두 즐겁습니다. 먹는 돼지고기도 행복의 관점에서 봐주세요. 먹거리는 생명입니다. 돌봄이 필요해요. 그 가치에 소비자들이 기꺼이 지갑을 열 때 산업이 바뀝니다.”

이천=FARM 강진규 기자
전문은 ☞ blog.naver.com/nong-up/2210255016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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