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고든 지음 / 이경남 옮김 / 생각의힘 / 1040쪽 / 4만3000원
자동차·항공·TV…발명품 쏟아낸 2차 산업혁명의 기술 혁신
인간의 생활 통째로 바꿔놔
빅데이터·AI 등 발전속도 빠르지만 생산성 증가에 끼치는 영향 미미
20세기 중반 성장에 비할 바 못돼
[ 송태형 기자 ] 전기, 화학, 철강 등의 기술혁신으로 촉발된 2차 산업혁명과 컴퓨터, 인터넷 등 정보통신기술(ICT)이 주도한 3차 산업혁명이 경제성장과 생활 수준 향상에 미친 영향력을 비교하는 것은 경제학계의 오랜 화두이자 관심사다. 주된 논점은 ‘1960년대 이후 컴퓨터·디지털 기술의 발명이 19세기 말 이후 전기모터, 내연기관 등의 발명만큼이나 장기 경제성장과 인류의 일상생활 변화에 중요하고 결정적이었나’이다.
경제성장 분야의 세계적 전문가로 꼽히는 로버트 고든 미국 노스웨스턴대 석좌교수(77)는 이 문제에 깊이 천착해온 경제학자다. 고든 교수는 ‘닷컴 열풍’이 한창이던 2000년 발표한 ‘신경제는 과거의 위대한 발명에 부응하는가’란 제목의 논문에서 19세기 말 쏟아져 나온 여러 분야의 발명을 종합해 1990년대 닷컴 혁명과 비교했다. 그의 결론은 ‘3차 산업혁명이 경제성장에 미치는 영향은 단기적이고 제한적’이라는 것이었다.
고든 교수는 지난해 펴낸 《미국의 성장은 끝났는가》에서 이런 주장을 확장해 상술하며 책 후반부에 더 진전되고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다. “로봇, 3차원(3D) 프린터,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 ‘미래의 발명’은 과거 위대한 발명의 ‘맞수’가 될 수 있을까.”
이 책은 남북전쟁(1861~1865년) 이후 미국이 겪은 경제성장의 굴곡진 여정에 관한 이야기다. 원제목은 ‘미국 성장의 성쇠(the rise and fall of American growth)’다.
고든 교수는 ‘특별한 한 세기’로 규정하는 1870~1970년 미국의 경제성장과 생활 수준 변화에 주목한다. 저자에 따르면 미국에서 1770년까지는 경제성장이 사실상 없었다. 1870년 이전 100년 동안은 느리게나마 성장이 이뤄졌고, 이후 1970년으로 끝나는 한 세기에 인류역사상 유례없는 비약적 경제성장과 생활 수준의 향상이 이뤄졌다. 동력은 전기, 화학, 철강 등 2차 산업혁명의 기술혁신 분야에서 쏟아진 위대한 발명이다. 1970년 이후 미국의 성장 속도는 둔화됐다.
저자는 1000쪽이 넘는 방대한 저작의 상당 분량을 이 ‘위대한 세기’에 자동차, 항공, 통조림, 실내배관, 상하수도, 냉장고, TV, 세탁기 등 2차 산업혁명 발명품들이 음식, 옷, 주택, 교통, 오락, 정보통신, 건강, 의료, 근로조건 등 우리 생활의 거의 모든 측면을 탈바꿈시켜 어떻게 현대의 생활 조건을 완성했는지를 보여주는 데 할애한다.
그가 성장을 판단하는 주요 기준으로 삼는 지표는 혁신과 기술 변화의 영향에 대한 표준화된 경제적 척도인 총요소생산성(TFP·total factor productivity) 증가율이다.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TFP 증가율은 1890~1920년 연 0.46%에서 1920~1970년 연 1.89%로 크게 올랐고, 1970~2014년 연 0.64%로 떨어졌다.
1970년 이후에도 혁신은 계속됐지만 3차 산업혁명 발명품의 범위는 오락과 정보통신에 집중돼 예전만큼 전면적이지 않았고, 전반적인 생활 수준 향상 속도도 느렸다. PC와 인터넷, 검색엔진, 전자상거래 등은 업무 관행과 절차를 근본적으로 바꿨지만 생산성 향상에 미친 영향은 1994~2004년에 한정됐다. 이 기간 TFP는 연 1.03% 비율로 높아져 1970~1994년 연 0.57%와 2004~2014년 0.4%보다 빠른 속도를 보였다.
저자는 로봇과 인공지능 등이 전대미문의 속도로 산업 전반에 생산성을 높일 것이라는 ‘테크노 낙관론자’들의 주장에 회의적이다. 책에서 던진 ‘맞수 질문’에 대한 저자의 답은 “될 수 없다”다. 그는 미래 산업의 주역으로 꼽히는 기술들을 하나하나 검토하며, 이들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정작 노동생산성이나 TFP 증가율에 미치는 영향력은 미미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4차 산업혁명’이란 용어를 쓰지 않는다. 새로운 산업혁명으로 부를 만한 경제성장의 혁신이 상당히 요원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향후 25년간 미국의 경제성장에 대한 저자의 전망은 어둡다. 이미 둔화한 생산성 성장 추세에 1970년대 이후 성장 메커니즘과 미국 사회의 구조적 요인에서 비롯된 불평등 심화, 교육 수준 후퇴, 낮아지는 경제활동 참가율, 노화하는 인구의 재정적 수요 등 역풍이 더해지고 있어서다. 고든 교수는 1인당 실질 가처분소득이 늘어날 여지가 없을 것이라고 진단한다. 그는 “오늘날의 젊은 세대는 부모 세대의 생활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는 첫 번째 세대가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저자는 영유아·중고등 공립교육 지원 확대, 저작권·특허법 관련 퇴행적 규제 완화, 고급 기술자 이민 장려, 조세제도의 누진성 강화 등 역풍과 더딘 생산성 성장에 맞선 정책 방향을 제시하며, 이 책의 논지를 이렇게 요약한다. “우리는 1870년대 선조들보다 ‘어마어마할 정도로’ 앞서 있다. 하지만 이제 그 발전 속도는 무뎌졌고 한두 세기 전 지속적인 성장을 방해했던 것보다 더 강력한 역풍에 맞서야 한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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