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인터뷰] 김병준 "진영논리 빠져 사슴을 말이라 하는데 청문회제도 바꾼들 무슨 의미 있겠나"

입력 2017-07-09 18:12   수정 2017-07-10 08:13

'두 번 낙마' 김병준 교수가 말하는 인사청문회

사실관계 '잣대' 바꿔가면서 한쪽은 옹호, 한쪽은 반대 외쳐
국민들은 정말 피곤한 일…

윤리 기준은 기본적 방향일 뿐, 일일이 따지다간 인재 못 구해
정치권, 국가비전 가져야 문화 바뀔것

도덕적 흠 있는 인사 임명하려면 대통령이 직접 국민 설득해야

청와대 '권력의 칼' 무뎌졌는데 보수는 인정않고 진보는 대중과 결합
타협 통한 협치·연정의 길로 가야



[ 이재창 / 박종필 / 신경훈 기자 ]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김병준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는 “국회 인사청문회가 진영 논리로 진행되다 보니 후보자의 역량과 국가 운영 비전, 전략에 대한 논의를 찾아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9일 한국경제신문과 한 인터뷰에서 “인사청문회는 진영 논리에 빠져 사실관계와 정치적 논리조차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김 교수는 2006년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으로 임명됐지만 야당의 반발로 취임 2주일 만에 사퇴했다. 또 지난해 탄핵정국에서 총리 후보자로 지명됐으나 현 여권의 반대로 청문회에 가보지도 못했다. 정치권 진영 논리의 희생자였던 김 교수는 인터뷰 내내 진영 논리의 문제점을 제기하며 정치권의 변화를 강하게 주문했다.

김 교수는 또 ‘대통령의 무뎌진 칼날론’을 비유로 들며 진보·보수 진영에 일침을 가했다. “보수는 이미 대통령의 칼이 무뎌졌다는 점을 모르고 정권을 운영해 실패했고, 무뎌진 칼을 인지한 진보는 시민단체와 노조 등을 끌어들이는 대중주의와의 결합을 시도하는 위험한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이다.

▷요즘 국회 인사청문회를 보면서 소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청문회를 보면 갑갑합니다. 따져야 할 것은 잘 따지지 않고 모든 걸 정치쟁점화합니다. 소위 진영(계파) 논리가 지배하는 거죠. 사실관계는 사실관계로 받아들여야 하는데 거기에도 편이 갈려 있어요. 표절이면 표절인데도 아니라고 하고, 표절이 아닌 걸 표절이라고 우겨요. 명백하게 도덕적으로 하자가 있는데도 누구는 된다 하고 누구는 안 된다 하는 식은 곤란합니다. 진영 논리로 사실관계의 잣대를 바꿔가면서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할 정도입니다.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논란은 그래서 나옵니다. 사실을 인정하고 양해를 구해야 하는데 그게 아닙니다. 한쪽은 무조건 옹호하고 한쪽은 무조건 낙마시키려 해요. 도대체 아이들에게 뭘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에 임명됐다가 2주 만에 물러나고, 지난해엔 총리에 지명됐지만 낙마했습니다.

“윤태영 전 청와대 비서관이 쓴 《바보 산을 옮기다》라는 책에서 나를 “인사에 있어서 불운하다”고 평했더군요. 2006년에 사실상 총리에 내정됐다가 당에서 반대하는 바람에 당에서 천거한 한명숙 총리로 교체됐어요. 그다음 부총리 지명을 받았는데 정치권에서 또 반대했어요. 어쨌든 청문회를 거쳐서 임명되고 난 다음에 다시 시비가 일어 내가 청문회를 요청했습니다. 역사상 후보자가 먼저 ‘나의 청문회를 열어달라’고 한 것은 처음이었을 거예요. 명백하게 표절 안 한 걸 표절했다고 주장하길래 내가 청문회를 요청했어요.”

▷표절이 아니면 버티지 그러셨어요.

“사실관계의 문제가 아니었어요. 표절 문제가 해소되니까 정치권이 연구비 문제를 들고나왔어요. 검찰조사 결과 무혐의였습니다. BK(대학원 연구인력 지원 국책사업) 연구비는 다른 연구비 수주를 전제한 것인데 이것을 이중수주라고 주장하는 등 정치 공세를 계속했어요. 그런 상황에서 계속 부총리를 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대통령 분신으로 각인돼 물러나지 않으면 계속 공격받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낙마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대통령에게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어요. 그만두고 한 달 반쯤 있다가 청와대로 다시 들어갔어요. 노무현 대통령은 내가 억울하다고 편지를 써주며 공개하라고 했어요. 하지만 그걸 공개하면 더 시비를 걸 것이라고 생각해 공개하지 않았죠.”

▷청문회 기준이 과거보다 높아졌다고 봅니까.

“잣대가 높아졌다거나 낮아졌다고 말하긴 어렵습니다. 시비 걸 수 있는 것은 다 거는 게 현실이죠. 사실관계와 정치 논리를 구분하지 못하는 게 정말 문제예요. 기준이 왔다 갔다 하는 것도 문제죠.”

▷일부 네티즌이 청문위원을 공격한 일도 있었어요.

“네티즌이 청문위원을 향해 ‘너는 잘났냐’고 공격하는 건 옳지 않습니다. 판사가 완벽해서 판결을 맡깁니까. 권한이 있기 때문에 판사의 판결을 수용하는 겁니다. 기자도 완벽해서 기사를 쓰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각자의 역할이 있는 겁니다. 표절한 국회의원도 표절을 따질 수 있는 거예요. 음주운전한 국회의원도 음주운전을 따질 수 있는 겁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직 배제 5대 원칙’은 어떻게 봅니까.

“일종의 상징적인 방향으로는 가능합니다. 하지만 이 원칙에 하나도 안 걸리는 사람을 찾겠다는 것은 무리입니다. 그러다간 역량 있는 인물을 찾을 수 없어요. 비전과 역량 등 능력이 중요한데 5대 원칙을 지나치게 적용하면 인재를 놓칩니다. 고도성장기에 ‘빨리빨리 문화’가 조성돼 여러 가지 위법과 범법이 있었고 이를 눈감아주기도 한 게 사실입니다. 완벽한 사람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도덕성의 큰 방향으로 선언하는 선에서 그쳤어야 했어요. 이 방향에서 어긋나면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이 사람이 왜 필요한지 설명하고 국민의 이해를 구하는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하자가 있지만 꼭 필요한 사람에 대해 대통령이 국민의 이해를 구하라는 것인가요.

“인사권자의 설득력 있는 설명이 필요합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발표하곤 그만이었습니다. 대통령이 꼭 관철시켜야 하는 경우는 그 이유를 설명해야 합니다. 일자리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가. 이걸 어떻게 할지 설명하고 ‘이 사람이 적임자다’고 한다면 위장전입했다고 해서 설득이 안 되겠습니까. 국민도 납득할 겁니다. 국회의원들도 강하게 낙마를 주장하기 어려울 겁니다. 국민이 이해하면 임명하는 것이고 이해를 못하면 깔끔하게 포기해야죠.”

▷교수 출신 후보자마다 논문 표절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표절 문제는 가리기가 어렵습니다. 최근에는 기준이 마련됐지만 예전에는 표절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았어요. 표절은 정치적 논쟁이 되기 쉬운 주제입니다. 내용 확인까지 하다보면 법원까지 몇 년에 걸쳐 가려야 하는 문제입니다. 함부로 표절 문제를 제기해선 안 됩니다. 정치권이 새로운 관행 확립에 도움을 준 것은 맞습니다.”

▷고위층의 도덕 불감증이 심각하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우리 사회 곳곳을 보면 역인센티브가 있습니다. 잘못한 사람이 상을 받는 거죠.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보다 이리저리 피해 다니면서 아부하고 접대 잘하는 사람이 승진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해요. 우리 사회 곳곳에 여전히 적당히 빠져나가는 사람이 잘되는 구조가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런 구조를 어떻게 고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월급을 아껴 돈을 모으고 주식을 장기 투자해서 돈을 버는 사람보다 재개발 딱지 사서 전매하는 사람들이 승승장구하는 게 있지 않습니까. 인간으로서 왜 그런 욕구가 없겠어요. 엘리트 여부를 떠나 사람이라면 누구든 유혹에 빠지게 됩니다. 사회의 이런 분위기를 바꿔야죠.”

▷청문회 제도를 손봐야 한다는 지적도 많습니다.

“법과 제도 이상의 문제를 풀어야 합니다. 진영 논리가 존재하는 한 제도 개선은 의미가 없어요. 도덕성 검증을 비공개로 한다고 그 원칙이 지켜지겠습니까. 결국은 전부 공개될 겁니다. 문화를 바꿔야 합니다. 우리 정치권의 국가에 대한 비전과 전략이 너무 약합니다. 청문회에서 ‘교육부 장관을 어떻게 하겠느냐. 어떻게 바꾸겠느냐’는 질문이 거의 없지 않습니까. 지난 4년간 골프장 출입 기록과 그린피를 누가 냈느냐에 대한 질문을 하는 게 현실이죠. 청문회에 대한 정치권의 인식이 바뀌어야 합니다. 정치권이 국가 운영 비전과 전략을 가질 때 문화도 바뀔 수 있을 겁니다.”

▷청와대 인사 검증이 실패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의도하지 않은 부실’ 또는 ‘시스템 잘못의 부실’, ‘편견의 부실’이 있을 수 있어요. 대통령의 임명 의지가 강한 사람이거나 우리 편이라고 생각되면 검증을 소홀히 하는 경향이 나타날 수 있죠. ‘이건 넘어갈 수 있겠지’ 혹은 ‘이건 돌파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넘어간 것도 있을 것이고 부실한 부분도 분명 있을 겁니다. 본인도 모르는 잘못이 나올 수 있는 거죠. 민정라인의 책임이 제일 큽니다. 청문회 전체로 봤을 때는 민정라인보다 대통령과 정책라인에 책임이 있습니다. 결함을 이길 수 있는 설득 논리가 있어야 합니다.”

▷진보진영이 10년 만에 정권을 잡았는데요.

“이제는 국가 권력, 특히 청와대 권력이 과거와 같지 않습니다. 칼이 무뎌지고 잘 들지 않는 상황입니다. 박정희, 전두환 정권처럼 이 칼이 잘 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보수진영이 그래요. 정권만 잡으면 뭐가 되는 줄로 착각하고 있어요. 그러다가 실패한 게 이명박, 박근혜 정권입니다. 그래서 보수정권이 실패하고 길을 잃은 것입니다. 진보진영은 이 칼이 잘 들지 않는다는 것을 조금은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자꾸 대중주의와의 결합을 시도하죠. 노조와 시민단체를 끌어들여 그 칼을 다시 갈아서 적폐를 청산하고 뭘 해보고 싶어합니다. 자칫 포퓰리즘으로 흐를 수 있어요. 이것은 안 됩니다. 진보가 위험한 길을 걷고 있는 거예요. 결국은 칼이 들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하고 대화와 타협을 통한 협치와 연정을 추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진보도 길을 잃을 것입니다.”

▷여야의 대결 정치로 정치가 실종됐습니다.

“대결 국면을 해소하려면 여야가 책임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정치권이 책임을 느끼지 않으니 극단적으로 가는 겁니다. 국민은 국회의원에게 책임을 지우면 엉망이 될 거라고 하는데 그래도 국회의원에게 책임을 지워야 합니다. 지금은 책임과 권한이 분리돼 있어요. 권한은 많은데 책임은 지지 않는 구조죠. 권한과 책임을 일치시키는 수단이 바로 내각제입니다. 그런데 내각제는 국민이 싫어하니 어렵죠. 개헌이 꼭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집권여당이 총리를 선출해서 보내주고 대통령이 그걸 받도록 하면 됩니다. 그러면 당이 국정을 책임질 수밖에 없겠죠. 개헌 안 하고도 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여의도가 지금보다 나아질 겁니다.”

■ 김병준 교수는

△1954년 경북 고령 출생
△대구상고, 영남대 정치학과 졸업
△미국 델라웨어대 정치학 박사
△강원대 행정학과 조교수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지방자치특별위원장
△전국사립대교수협의회 공동회장
△노무현 대통령 후보 정책자문단장
△청와대 정책실장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
△청와대 정책특보
△(사)공공경영연구원 이사장

만난 사람=이재창 선임기자 leejc@hankyung.
정리=박종필 기자 jp@hankyung.com
사진=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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