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 땐 좋지만 뒷감당이 안 되네…무리한 과욕의 후유증 '승자의 저주'

입력 2017-07-10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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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경매·입찰 등에서 빈번히 발생
부실한 가치평가에 과도한 베팅이 원인



[ 임현우 기자 ]
■ 금주의 시사용어

승자의 저주
치열한 경쟁에서 이겼지만 승리를 위해 능력 이상의 과도한 비용을 치른 탓에 오히려 위험에 빠지거나 큰 후유증을 겪는 상황을 말한다. 승자 독식(winner takes all)과 대비된다.

면세점 업체들이 요즘 울상이다. 중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보복’으로 중국인 관광객이 뚝 끊겨 매출이 급감한 탓이다. 임대료도 못 낼 지경이 되자 사업권을 자진 반납하는 업체까지 나왔다. 면세점은 1~2년 전만 해도 성장 전망이 밝아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렸다. 사업권을 따내기 위한 경쟁 입찰에서 업체마다 거액을 ‘베팅’하며 혈투를 벌였다. 하지만 전국 면세점이 49개까지 늘자 금세 포화상태로 바뀌었고, 예상치 못한 사드 악재까지 덮치면서 이제는 ‘승자의 저주’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승자의 저주는 경쟁에서 이겼지만 이로 인해 오히려 더 큰 후유증을 치르는 상황을 뜻한다. 1950년대 미국 텍사스주의 석유채굴권 경매가 과열돼 낙찰가가 실제 가치보다 과도하게 높게 결정됐던 데서 처음 등장한 말이다. 1992년 미국 시카고대 경영대학원의 리처드 탈러 교수가 쓴 《승자의 저주(The Winner’s Curse)》라는 책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승자가 모든 것을 갖는다는 ‘승자 독식(winner takes all)’과 대비된다. 다분히 결과론적인 평가이기도 하다.

승자의 저주는 기업 인수합병(M&A)에서 특히 자주 볼 수 있다. 공격적인 M&A로 사세를 키우는 데는 성공했지만, 무리한 금액을 지불한 탓에 인수 후 뒷감당이 안 돼 그룹 전체가 유동성 위기에 빠진 사례가 국내에서도 적지 않다. 정부 입찰이나 경매에서도 비슷한 예가 많다. 2000년 영국의 3G 통신 주파수 입찰에서는 통신사들의 기싸움에 불이 붙어 1890억원에서 출발한 주파수 가격이 10조원 이상으로 치솟기도 했다.

경쟁 입찰에서는 매물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고, 자금 조달 계획을 꼼꼼히 세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일단 세게 지르고 보자’는 생각이 앞서 이런 절차를 건너뛰어버리면 승자의 저주를 피하기 어렵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때론 과감한 모험이 필요한 순간이 있지만, 자기 능력 이상의 과욕은 위험천만한 법이다.

미국 컨설팅업체 맥킨지 조사에 따르면 M&A 사례의 절반 이상에서 기업 가치가 제대로 평가되지 않은 것으로 분석됐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은 승자의 저주를 피하는 비결을 이렇게 설명했다. “경매에는 절대 참여하지 말라. 만약 경매를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최고 평가액을 정하고 거기서 20%를 빼라. 그리고 단 1센트도 더하지 말라.”

임현우 한국경제신문 기자 tard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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