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조 공정위원장 "삼성, 계열사 이사회 개최 전 합병·상장 정보 모두 알려줬다"

입력 2017-07-14 19:44  

'이재용 재판'에 나온 김상조 공정위원장


[ 좌동욱/이상엽 기자 ]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14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39차 공판에 출석해 논란이 될 만한 발언을 쏟아냈다. 기업의 미공개정보를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진술이 대표적이다. 그는 “경제개혁연대 소장 시절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삼성SDS 상장 등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있었던 삼성그룹의 주요 의사 결정 사실을 이사회 개최 전 삼성 고위임원으로부터 전달받았다”고 했다. 김 위원장의 발언은 시민단체가 국내 주요 대기업의 경영 판단에 깊숙이 개입해왔다는 뜻으로 해석될 소지가 크다. 현직 공정거래위원장 신분으로 대기업 주요 경영진이 피고인으로 있는 재판에 참석하는 게 불공정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검팀에 이어 진행된 반대심문에서는 “금융지주회사가 없어도 삼성전자가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것은 (법적으로) 가능하지 않나”라는 삼성 변호인단의 질문에 “삼성은 법을 지켰다는 것만으로 사회적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기업이 아니다”고 김 위원장은 주장했다.

특검과 일문일답

▶증인은 경제개혁연대 소장으로 재직할 때 삼성과 한화를 제외하고는 기업인들과 대화를 계속 해왔다고 말했다. 왜 그런가.

“기업의 의사결정 과정은 신속하고 유연하게 바뀌어야 한다. 외부인이 알기 어려운 기업의 내부사정은 존중돼야 한다. 외부인이 문제제기를 할 때 기업에 큰 손실을 끼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칙을 세웠다. 우선 비공개 질의서를 보내고 그래도 해소가 안 되면 검찰 고발 등 추가적인 조치를 하는 것이다. 10개 정도 문제제기를 하면 5개 정도는 기업들의 설명을 듣는 과정에서 해소가 된다. 나머지 5개 중 3개 정도는 문제제기가 정당성은 있지만 해결 과정에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봐서 인내심을 갖고 기다린다. 그래도 바뀌지 않을 경우 민·형사 소송을 제기한다. 이런 사례는 10개 중 1~2건 정도다.”

▶삼성과 관계는 어땠나.

“제가 삼성 저격수라는 별명을 갖게 된 것은 삼성과 대화 채널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개적으로 문제제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2013년 5월 삼성 사장단에 강연한 적이 있다.

“그렇다. 그 이후 삼성과 대화 채널이 유지됐다. 경제개혁연대가 주로 하는 일이 기업지배구조 개선이다. 그래서 그룹 최고재무책임자(CFO)인 김종중 사장이 대화 파트너가 됐다. 주요 사안을 발표하기 전에 제 의견을 물었다.”

▶김종중 사장이 계열사 이사회 개최 이전 주요 현안을 미리 알려준 적 있나.

“굉장히 많았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이재용 부회장의 삼성그룹 계열사 공익재단 이사장 취임, 삼성SDS 상장, 제일모직과 에버랜드 합병 등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있었던 그룹 주요 의사결정을 대부분 이사회 개최 전에 연락해 줬다. 이런 사안은 대부분 주총 결의가 필요한 핵심 경영 사안이다.”

▶김 사장이 왜 이런 걸 알려줬다고 생각하나.

“굉장히 독특한 사람이다. 제가 사익을 추구하거나 외부에 알려주면 김 사장과 삼성이 큰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제가 이렇게 사전에 알려줘도 되냐고 물어보니 김 교수는 외부에 알리거나 사익을 취하지 않을 것으로 믿고 있다는 답을 내놨다.”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도 이사회 개최 전에 들었나.

“당시 증권가에서 추측성 보고서가 많이 쏟아지던 시점이다. 합병 결의가 있을 거라고 알려주면서 개인 의견을 물었다. 그래서 왜 (이재용 부회장이 지분을 갖지 않은) 삼성물산 주가가 최저일 때 합병을 하냐. 또 합병 시너지 효과가 있다고 할 수 있느냐 등 앞으로 제기될 수 있는 논란들을 모두 이야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내려진 그룹 결정대로 진행됐다. 경제개혁연대는 삼성그룹의 합병 발표 직후 우려 사항을 논평에 담아서 내놨다.”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을 ‘커튼 뒤의 조직’이라고 비판했다.

“삼성은 외형적으로는 각 계열사 이사회를 통해 주요 경영사안을 결정하지만 실제는 미래전략실을 통해 계열사 주요 경영 사항들이 취합되고 결정된다. 비서실, 구조조정본부, 미래전략실 등 이름은 바뀌어왔지만 기능은 언제나 같았다.”

▶2014년 이건희 회장이 갑자기 쓰러진 후 미래전략실은 어떻게 운영됐나.

“삼성 고위 임원을 만날 때 가장 궁금했던 사안이다. 김종중 사장이 말하길 ‘과거 이건희 삼성 회장이 건재할 때 이학수 전 부회장 등 미래전략실의 참모 조직이 기본적인 의사 결정안을 만들어 보고하면 이 회장이 승인하고 집행했다’고 했다. 하지만 이 회장의 와병 이후엔 이재용 부회장,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 부회장, 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사장, 김종중 전 미래전략실 사장 등 4인 체제가 주요 의사결정을 협의해 처리한다고 말했다. 특별한 외부 출장이 없는 한 매일같이 사무실에 모여 회의를 한다고 들었다. 놀라운 답변이었다.”

▶4명 간 이견이 있으면 어떻게 조정되나.

“10개 중 4개 정도는 이 부회장 의견을 따르고 나머지는 참모들이 건의한 대로 결정된다고 들었다.”

▶증인이 생각하는 삼성과 현대차그룹 경영권 승계를 비교해 달라.

“삼성과 현대자동차그룹은 매우 유사한 상황이다. 두 그룹 모두 외아들이 경영권을 물려받아야 하는 과제가 있다. 지분 상으로 보면 삼성이 더 진전됐고 현대차는 취약하다. 하지만 경영 능력 입증은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더 앞섰다고 평가할 수 있다.”

▶대통령이 경영권 승계를 적법하게 진행해야 한다는 식의 원론적인 이야기만 해도 공무원들에게 큰 영향을 준다고 했다고 말했는데.

“회사 합병·분할, 주식 이동 등은 기업의 중요한 경영상 판단이다. 적법과 불법을 따지는 정부부처의 재량적 판단이 있다. 대통령이 적법성과 엄정한 법 집행을 강조하면 시장 감독기구는 신중하게 행동할 수밖에 없다. 반대로 대통령이 경영권 승계에 대해 우호적인 시그널만 줘도 경영권 승계가 원활해진다. 특히 금융위원회와 공정거래위원회의 경우 광범위한 재량권을 가진다. 매일 천문학적인 거래가 이뤄지고 다양한 형태의 거래가 있는데 이를 일일이 법령에 기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삼성 측은 오래전에 이 부회장이 승계를 완성했다고 한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이 이사회 판단이라는 주장이다. 동의하나.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 계열사 CB와 BW 발행을 통해 계열사 지분을 확보해 경영권 승계가 완성됐다는 인식은 매우 잘못됐다. 현재의 삼성그룹 출자 구조는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는 취약한 구조다. 지속가능하지 않은 구조다. 따라서 승계 구도를 안정화시키기 위한 추가적인 작업의 필요성이 있었다. ”

▶삼성은 합병이 개별 계열사 차원의 순수한 경영상 판단이라고 한다.

“저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좌동욱/이상엽 기자 leftk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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