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열의 데스크칼럼] 트럼프의 비자 정책 '선물'

입력 2017-07-16 17:36  

김홍열 국제부장 comeon@hankyung.com


미국 비자의 정치·경제·외교안보적 함의는 다층적이다. 최근 한 미국 칼럼니스트는 중국이 북한 핵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설 수 있도록 미국 비자를 활용하자고 했다. 중국 정부 고관들 자제 상당수가 미국 유학을 하고 있다는 데 착안했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딸은 하버드대를 다녔다. 미국이 이들에게 비자 발급을 중단하면 중국이 결국 움직일 것이라는 그럴듯한 발상이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비자 정책을 조자룡 칼 쓰듯 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미국인을 공격할 수 있는 불순분자 입국을 막는다는 명분이다. 일부 중동국가 사람들에게 비자 발급을 제한하는 조치를 내놨다. 세계적 비난을 사고 있으나 비자를 테러 예방책의 하나로 삼은 것이다.

'천재 비자' 제한하는 미국

경제 분야에선 ‘파괴적’이다. ‘일자리 안보’가 정책의 목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기치를 내걸었다. ‘미국 제품을 구입하고(Buy American), 미국인을 고용하라(Hire American)’는 정책이다. 핵심 수단이 H-1B 비자 발급 제한과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비자제도 시행 연기다. 외국인에게 고급 일자리를 주지 말고, 미국인에게 주도록 유도하는 정책이다.

미국은 컴퓨터공학자, 엔지니어 등 전문직 인력 50여만 명이 모자라 아우성이다. 애플, 구글, 페이스북을 비롯한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외국인 전문직 인재를 구한 뒤 미 정부에 H-1B 비자 발급을 신청하고 있다. 주로 하버드대, 스탠퍼드대, 매사추세츠공대(MIT) 등을 졸업하는 외국인 인재들을 붙잡아 활용한다. 그래서 H-1B를 ‘천재(genius) 비자’라고도 부른다. H-1B 발급 제한이 미국 경제를 무너뜨릴 조치라며 강력 반발하는 실리콘밸리의 심정을 헤아릴 만하다.

스타트업 비자제도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임기 말 전격 도입했다. 외국의 스타트업 창업자가 미국 정부에서 10만달러(약 1억1500만원) 이상 보조금을 지원받거나 25만달러 이상 벤처자금을 투자받을 경우 30개월마다 미국 체류기간을 연장받을 수 있는 제도다.

이들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꾼다. 스타트업 비자제도 시행 연기 소식에 거세게 반발하는 이유다. 미국 유니콘(기업 가치 10억달러 이상 스타트업)의 절반 이상을 이민자 출신들이 창업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고 한다. 미래에 창출될 거대한 부(富)와 수많은 일자리의 싹을 자르지 말라고 경고한다.

창업 생태계 열악한 한국

중국은 시 주석 지시 아래 해외에서 유학하고 있는 자국인 인재 10만 명을 본국으로 불러들이는 정책을 가동 중이다. 시 주석은 트럼프 대통령의 근시안적 비자 정책의 역풍이 둘도 없는 호기라며 미소 짓고 있을 게다.

데이터분석 솔루션 개발업체 ?코랩처럼 스타트업 비자제도 연기에 반발한 일부 스타트업은 이미 홍콩에서 새 둥지를 틀고 있다. ?코랩의 공동 창업자 릭 청은 불안한 비자 정책 때문에 미국에선 더 이상 사업을 못하겠다고 두 손 들었다.

문재인 정부는 막대한 재정을 퍼부어 공무원 일자리부터 늘리기로 했다. “세계 100대 스타트업이 한국에서 창업했다면 절반 이상이 규제에 막혀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라는 목소리를 귀담아들었는지 모르겠다. 범국가적인 인재 유치 정책을 세우고, 규제 개혁으로 창업 생태계를 빅뱅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주는 ‘선물’을 경쟁국에 모조리 빼앗길 순 없다.

김홍열 국제부장 come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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