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기술을 농업에 접목
벤처열풍 농촌까지 스며들게 해야"
이우일 < 서울대 교수·기계공학 >
4차 산업혁명은 당분간 우리 과학기술 분야는 물론 사회·경제 전반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될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을 어떻게 정의하는가에 대한 논란은 있지만, 4차 산업혁명이 완성된 후 우리 사회의 변화상을 그려보는 것이 정책 방향 설정에 앞서 해야 할 일이다. 좋든 싫든 4차 산업혁명은 자동화와 초연결 사회를 지향할 것이다. 자동화로 인한 일자리 감소, 나아가 인간성 상실까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세계적 변화의 물결에 저항한다면 구한말 1, 2차 산업혁명에서 뒤떨어짐으로써 우리가 겪었던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는다는 법은 없다.
제조업은 한국 경제의 버팀목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독일이 ‘인더스트리 4.0’에서 표방하고 있듯이 우리도 자동화를 통해 제품의 품질과 생산성 향상을 꾀할 수 있고, 이는 우리 제조업의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을 제조업 경쟁력 강화의 수단으로만 인식한다면 양극화가 심해지고 일자리 등 사회 문제가 더 심각해질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 우리는 제조업 이외의 1, 3차 산업 경쟁력을 도외시해 왔다. 그러나 후발국들이 맹추격하고 있고, 많은 공산품의 품질 차이가 작아지고, 가격 경쟁도 심해지면서 제조업만으로는 성장을 견인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4차 산업혁명으로 급변하고 있는 1, 3차 산업 환경은 우리에게 위기인 동시에 기회다. 특히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산업은 농업이다. 농업은 고령화 추세와 혁신의 실종으로 인해 우리 경제에 부담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각종 보조금과 정부예산 지원 없이 농업을 말하기 어렵게 됐다. 그러나 먹거리 품질에 대한 국내 수요자의 관심과 함께 후쿠시마 사태를 겪은 일본, 식품 안전이 취약한 중국이 새로운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우리 농업은 300만여 명의 농업 인구가 국내총생산(GDP)의 2% 남짓 기여하는 소규모 영농 위주다. 정부 보조에 대한 의존은 혁신 메커니즘을 더 어렵게 해 놓았다. “농업은 과학기술이 95%이며, 나머지 5%가 노동이다”라는 한 네덜란드 농업정책 전문가의 말대로 최신 기술을 잘 활용한다면 농업을 효자산업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을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 키워드 중 하나인 ‘자동화’는 농산물의 품질과 생산성을 위해 진일보한 해법을 제시할 수 있다. 또 초연결 사회의 결과로 생기는 유통구조 변화는 수요 예측과 판매 방법에서 생산자에게 획기적으로 유리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최신 기술을 이용한 혁신시스템을 어떻게 농업에 도입해 변화에 시동을 거느냐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해답은 정보기술(IT)산업의 성공 사례에서 찾을 수 있다.
IT 혁명은 미국 실리콘밸리의 벤처를 빼고서는 말하기 어렵다. 수많은 혁신이 이들 벤처에서 비롯됐고, 혁신은 새로운 소비자를 만들어 내고 시장을 키움으로써 또 다른 혁신의 기반이 됐다. 이런 혁신의 선순환이 농업에서도 가능하려면 서비스업과 제조업의 벤처 열풍을 농업으로 확산시켜야 한다. 청년들이 영농집단을 결성해 첨단 영농기술과 판매 네트워크를 도입한다면 대부분 고령자인 농촌 주민과 ‘윈·윈’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비즈니스 모델은 정부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젊은이들의 창의성을 믿어야 한다. 정부의 역할은 초기 시범사업에 국한하면 된다.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시범지역을 선정하고, 적절한 운영팀을 골라 운영을 맡기기만 하면 된다. 물론 자동온실 등 영농에 필요한 기술과 시설을 개발해 시범사업 벤처에 저가로 공급하며 시범사업의 정착을 돕는 것은 정부와 연구기관의 몫이다.
농촌의 선진화는 우리가 진정한 선진국가로 가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농촌으로 젊은 인구가 유입되고 일자리가 생긴다면 우리가 열망하는 지역균형발전도 절로 이뤄질 것이다. 시장은 무르익었고 영농 관련 첨단기술도 대부분 우리 손안에 있다. 변화의 단초를 제공하는 일만 남았다.
이우일 < 서울대 교수·기계공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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