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치즈 생산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건 1967년으로 알려져 있다. 벨기에 출신의 지정환 신부가 전북 임실 농가들의 소득을 높이기 위해 산양에서 짠 우유로 치즈를 만드는 기술을 전수했다. 이곳에서 생산된 치즈는 신라호텔 등 고급 외식시설에 납품됐다. 임실 치즈마을의 시작이다.
그로부터 50년이 흘렀다. 한국인의 치즈 사랑은 나날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치즈 소비량은 14만760t으로 7년 전인 2009년 7만1444t에 비해 두배 가까이 증가했다. 국내 생산도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치즈 생산량은 2만9174t으로 같은 기간 25.7% 많아졌다.
종류도 다양해졌다. 부드러운 일반 치즈부터 크림치즈, 스트링치즈 등이 인기를 끌더니 특유의 ‘꼬릿한 맛’을 내는 숙성치즈를 좋아하는 마니아층도 생겼다.
요즘 치즈 마니아들이 주목하고 있는 것은 ‘목장형 치즈’다. 목장에서 바로 가져온 신선한 우유를 이용해 만드는 치즈다. 경기 포천시에 있는 국내 대표 목장형 치즈공방 중 한곳인 하네뜨를 찾았다. 이곳에서 치즈를 만드는 장미향 대표는 포천을 임실 못지않은 치즈 메카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와 함께 고소한 치즈 이야기를 나눠보자.
◆‘100m’ 목장과 치즈 공방까지 거리
하네뜨는 자연치즈와 숙성치즈를 직접 생산하는 공방이다. 스트링 치즈와 구워 먹는 치즈인 꾼치즈, 숙성치즈인 틸지터와 베르크 등을 직접 만든다. 이곳 치즈는 인근 거사목장의 우유를 사용한다. 장 대표의 남편인 김영식씨가 운영하는 목장이다. 거리는 100m. 장 대표는 거사목장의 젖소 60~70마리가 짠 따뜻한 우유를 매일 아침 바로 가져와 치즈를 만든다.
“치즈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원료입니다. 어느 집 우유로 만드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져요. 같은 레시피로 만들어도 우유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면 제대로된 맛이 안나옵니다. 저희 같은 경우는 30년 이상 운영한 목장에서 짠 우유를 사용하기 때문에 맛과 성분을 이해하고 만들죠.”
장 대표가 이렇게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건 거사목장이 퇴비와 사료까지 직접 생산하는 자연순환형 목장이기 때문이다. “소의 배설물을 퇴비로 만들고, 그것을 활용해 사료 작물을 재배합니다. 그리고 그 사료를 먹은 소들이 다시 우유를 생산하는 게 자연순환형 목장이에요. 다른 곳에서 어떻게 만들었는지 잘 모르는사료를 먹이는 것보다는 이렇게 하는 게 마음이 편해요.”
베르크, 틸지터 등 경질 치즈에 대해선 장인급니다. 경질 치즈는 숙성 치즈의 일종으로 수분 함량이 35% 이하인 딱딱한 치즈를 뜻한다. 베르크와 틸지터를 포함해 에멘탈, 체다, 로마노, 콜비 치즈 등이 경질 치즈로 분류 된다.(수분 함량에 따라 초경질, 경질, 반경질 치즈로 나뉜다.) 장 대표는 베르크와 틸지터로 목장형 유가공협회와 축산과학원이 주최한 자연치즈 경연대회에서 금상도 받았다.
일반 소비자들에게 인기가 있는 것은 숙성 치즈보다는 자연치즈다. 최근에는 스트링 치즈가 인기가 높다. 장 대표는 “어린이들의 간식으로는 스트링치즈가, 마니아들에겐 숙성 치즈가 많이 판매된다”고 설명했다.
◆‘14년’, 그녀가 치즈와 사랑에 빠진 기간
1986년 거사목장을 운영하는 김 씨와 결혼한 장 대표는 고민이 있었다. 소를 키우는 것이나 목장 일을 거드는 것은 그런대로 할만했다. 문제는 우유. 그는 선천적으로 우유를 잘 소화시키지 못했다. “제가 약간 단백질 분해를 잘 못시키거나 유당불내증이 있었던 것 같아요. 우유를 마시면 속이 항상 더부룩했어요. 목장에 시집을 왔는데 우유를 못마신다니 억울한 거에요. 냉장고에 우유가 이렇게나 많이 쌓여있는데 마실 수 없다니 아까웠죠.”
장 대표는 다양한 시도를 해봤다. 우유를 끓여보기도 하고, 다른 것을 섞어 먹어보기도 했다. 다양한 가공도 시도했다. “우유를 끓여서 커피를 타먹거나, 발효시킨 요구르트와 자연치즈는 먹어도 속이 더부룩하지 않더라고요.”
유제품 가공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치즈와 요구르트 제조법을 배우고 싶어졌다. 남편도 취미삼아 해보라며 추천했다. 그무렵 농촌진흥청에서는 자연치즈 제조교육을 시작했다. 장 대표는 2004년 봄 여주농고에서 진행된 제2회 치즈제조 교육을 받았다. “일본에서 선생님이 오셔서 2주간 치즈를 만들어보는데 제대로된 치즈가 하나도 안나오는 거에요. 오기가 생겨서 가을 교육을 다시 신청했죠.”
취미가 사업이 된 것은 2009년이다. 사업화 여부를 고민하고 있을 무렵, 농촌여성창업 지원대책이 새로 나오며 지원금을 받을 수 있게 됐다. 그는 농진청을 통해 1억원을 지원받아 치즈 공방을 지었다. “이왕 사업을 시작한 것, 진짜 제대로 해보고 싶었어요. 지원금만 가지고 사업을 하겠다고 생각하면 망하기 쉬워요. 내 돈을 쓴게 아니니까 덜 노력하게 되죠. 저는 지원금보다 더 많은 개인 돈을 투자했어요. 스스로 정한 투자 금액을 지원금과 무관하게 썼죠.”
공방 이름은 하네뜨라고 지었다. 손(hand)와 정직함(honette)을 뜻하는 프랑스어를 합성해 하네뜨(hanette)라는 이름을 지었다. “처음에 회사의 캐치프레이즈를 ‘장인이 만드는 치즈’라고 지었어요. 그땐 장인이 아니었지만 앞으로 더 노력을 해서 진짜 장인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하는 계기가 됐어요.”
장 대표는 이후 치즈 공부에 좀 더 매달렸다. 그는 독일과 이탈리아의 치즈 공방도 찾아다녔다. “그땐 치즈 도구를 구하기 어려울 때였어요. 이탈리아 치즈를 만들려면 이탈리아에 가서 도구를 사와야하는 줄 알았죠.”
2012년엔 독일로 연수를 떠났다. 황석중 박사가 이끄는 연수단은 독일 알고이 지역의 호론이라는 농가에서 먹고 자며 치즈를 만드는 실습을 했다. “알고이 지역의 농가들은 20여명이 우유 생산을 하고, 치즈 등 가공 식품을 지역 내에서 모두 소비하더라고요. 자연순환형 농법이나 로컬푸드 운동에 좀 더 확신을 갖게 됐습니다.”
견학을 다녀온 장 대표는 곧바로 아들을 같은 지역으로 보냈다. 장 대표의 아들은 그곳에서 여러곳의 목장에서 숙식하며 수개월간 치즈를 만들었다. 장 대표는 “목장과 치즈 공방은 물려줄 수 있어도 그 안에 담긴 제품의 품질과 장인정신은 쉽게 이어지는 것이 아니다라는 생각에 치즈 본고장으로 아들을 보냈다”고 말했다. 장 대표의 아들은 현재 한국에 돌아온 후 하네뜨의 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50km’ 포천에서 상계동까지만 진출할래요
장 대표가 만드는 치즈와 요구르트 등 유제품엔 보존료, 향신료, 착색제 등 인공 첨가물이 들어가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유통기한이 짧고, 쉽게 상한다. 장 대표는 “상온에 두면 곰팡이가 쉽게 생기는 치즈”라며 “방부제가 다량 함유돼 오래 둬도 변하지 않는 다른 제품들과는 다르다”고 말했다. 물론 이때문에 대량으로 생산하거나 대형마트 등 유통업체에 납품해 사업을 확대하기는 어렵다. 장 대표는 “농협 중앙회 등에서 전국 하나로마트에 매대를 마련해주겠다고 제안이 왔지만 치즈 생산과 보관, 운송, 반품 비용 등을 고려했을 때 현실적으로 그렇게 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장 대표는 오히려 포천 근방에서만 치즈를 파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그가 생각하는 최대치는 반경 50km다. “제 치즈는 대기업들의 제품과는 달라요. 배송기간과 진열기간이 길면 쉽게 상합니다. 더 멀리 가겠다는 것은 욕심이에요. 지역에서 나는 특산물과 결합해 포천에 와야 제대로된 제품을 맛볼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로컬푸드로 키우고 싶어요.”
현재 하네뜨는 지역 내 어린이집에 간식을 납품하고 있다. 연내 서울 상계동의 협동조합 매장과 하나로마트 창동점에도 입점할 계획이다. 하나로마트 창동점과 하네뜨 치즈공방 사이의 거리는 49km. 장 대표는 “50km 이내에서만 판매한다는 원칙에 부합하는 가장 먼 매장”이라고 소개했다.당일 배송하는 택배 판매도 확대할 예정이다. 장 대표는 “일정 금액을 내고 회원 가입을 하면 정기적으로 치즈와 요구르트를 보내주는 꾸러미 사업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6차산업’ 새로운 기회
하네뜨가 제품 판매 이상으로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은 체험 활동이다. 장 대표는 하네뜨는 우유를 직접 생산(1차산업)해 치즈로 가공하고(2차산업), 관광과 연계한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3차산업)하는 6차산업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네뜨는 2012년 체험을 본격적으로 하기 위해 건물을 한동 더 지었다. 새 건물은 몇가지 설비를 추가해 그럴듯한 치즈 공방으로 꾸미고, 기존의 건물을 체험장으로 썼다. 인터뷰를 진행한 7월4일에는 인근 지역의 중학생들이 치즈 체험 교육을 하러 왔다. 치즈의 역사와 종류에 대해 배우고 직접 치즈를 만든 후 직접 요리까지 해먹었다. 장 대표는 학생들에게 “상온에 두면 금방 곰팡이가 생기는 게 그렇지 않은 것보다 좋은 음식”이라고 했다.
장 대표는 “치즈에 대한 정보를 나누며 좋은 먹거리가 무엇인가에 대해 공부할 수 있는 기회”라며 “올해 체험객은 약 3000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볼거리를 늘리기 위해 치즈 제작 도구를 전시한 소소한 박물관도 열 예정이다. “제가 초창기에 쓰던 치즈 제조 도구들을 전시하고 간단한 제작 방식 설명을 곁들였어요. 지금은 치즈박물관이라기보다 어쩌면 개인박물관에 가깝죠. 여유가 되면 몇가지 폼나는 전시품을 구매해서 꾸며 놓을거에요.”
장 대표는 농축산업은 힘들다고 했다. 치즈 만드는 것도 한번 만들때마다 보통 2~3시간을 서서 일한다. 없던 근육까지 생겼다. 그럼에도 그가 농축산업을 계속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식품은 약 이상으로 중요합니다. 수공예품을 깎는 정성으로 만든 치즈를 먹고 누군가 건강해졌다고 말할 때 기분이 정말 좋아요. 경기가 아무리 어렵다고해도 좋은 먹거리에 대한 수요는 계속 늘어납니다. 매출이 줄지 않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어요. 한번 하네뜨 제품을 먹어본 사람들은 마트에서 파는 일반 제품을 먹기 어렵다고들 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있는 한 일이 힘들어도 보람을 얻곤해요. 제가 이 일로 큰 돈을 벌지는 못하겠지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면 계속 해나갈 생각이에요.”
포천=FARM 강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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