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명 금융부 기자) 시원섭섭해 보였다. 임기 마지막 날인데도 책상 위에는 업무보고 서류가 가득했다. 방금 전까지 들춰 본 흔적이 역력했다. “마지막 날인데도 봐야 할 서류가 이렇게 많네….” 목소리는 담담했다.
지난 18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16층 금융위원장 집무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집무실에 홀로 있었다. 이날은 임 위원장의 임기가 끝나는 날이다. 2015년 3월 농협금융지주 회장에서 금융위원장으로 자리를 옮긴 지 2년4개월여 만이다. 2008년 금융위원회 설립 이후 ‘최장수 위원장’이다. 떠나는 ‘임종룡’을 금융위 공무원들은 아쉬움으로 보냈다. 이날 오후 4시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이임식에서 임 위원장도 눈물을 보였다.
전남 보성 출생, 58세, 1981년 행정고시 24회로 공직생활 시작, 재정경제부 금정국 출신의 정통 경제관료…. 그의 이력이다. 하지만 이같은 이력 만으로는 그를 설명할 수 없다. 그의 별명은 ‘똑부’다. 똑똑하고 부지런하다는 뜻이다. 34년 공직생활을 통틀어 이런 찬사는 없을 것이다. 고위 관료 중 어떤 이는 ‘똑똑한데 게으르다’는 평가를, 어떤 이는 ‘부지런한데 스마트하지 않다’는 평가를 듣기 일쑤다. 똑똑하고 부지런하다는 평을 모두 받을 수 있는 관료는 손에 꼽을 정도다.
그의 또 다른 별명은 ‘구조조정 집도의’다. 이 또한 그에게 딱 들어맞는 별명이다. 그는 사무관 시절부터 굵직한 기업 구조조정 업무를 도맡았다. 사무관 때인 1980년대 말 재무부 산업금융과에서 구조조정 실무를 맡았고, 1997~1998년 외환위기 때는 금융기업구조조정 TF 팀장을 맡아 대우그룹 해체작업을 주도했다. 2015년 금융위원장으로 와서는 대우조선, 한진해운, 현대상선 등 조선·해운 구조조정을 총괄했다.
다음은 임 위원장 집무실에서의 대화다.
“어서 와요~.”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내일 아침엔 오랜만에 늦잠 한번 주무시죠.”
“에이 그게 말처럼 안돼요. 이른 아침이면 눈이 그냥 떠져. 하하”
“시원섭섭 하시겠습니다. 앞으로 뭘 하실 계획이세요?”
“당분간 아무 것도 안하고 푹 쉬어볼려고 해요.”
“담배도 끊으셔야죠?”
“얼마 전에 금연클리닉 갔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더라구. 약을 지어준다는데 석달을 먹어야 효과가 있다네.”
임 위원장은 담담히 소회를 밝혔다. 민감한 얘기도 많았다.
그는 금융위원장 시절 가장 힘들었던 걸 ‘국회’라고 했다. 정확히 말하면 국회 대응이다. 그는 “법안을 만들고, 정책을 올려도 이게 언제 통과될 지, 국회 논의 과정에서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상황이 계속 됐다”며 “그런 상황이 답답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회 대응은) 관료로서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할 숙명”이라고 했다. 그는 “공무원들이 국회에 잘 맞춰야지 달리 방법이 없다”며 “후임 최종구 위원장도 아마 절실히 느낄 것”이라고 했다.
임 위원장은 담배를 한 대 피우자며 옥상에 올라갔다. 그가 피우는 담배는 에쎄다. 지난해 현대상선 구조조정이 난관에 봉착했을 때, 올해 초 대우조선 회생작업이 국민연금 반대에 부딪혀 좌초위기에 직면했을 때 줄담배를 피웠다고 한다. 그는 담배 한 대를 꽤 오래도록 피웠다. 내뿜는 연기에 34년 공직생활을 마감하는 소회가 담겨있는 듯 했다. (끝) / chihiro@hankyung.com
ⓒ 한국경제 & hankyung.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