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머니 게임에 빠진 금융업, 거대한 브로커가 되다

입력 2017-07-20 20:37   수정 2017-07-21 07:16

금융의 딴짓
존 케이 지음 / 류영재 옮김 / 인터워크솔루션즈 / 524쪽 / 2만3000원

금융업 본령인 자본 배분 않고 각종 차익거래 수익에만 몰두
신뢰 없이 타인의 돈 굴리기도

금융 중개고리 단순화하고 부정 저지른 개인에 책임 물어야



[ 심성미 기자 ] “금융은 사회를 이롭게 합니까?”

미국 시카고대 교수인 루이지 징게일스가 2015년 미국재무학회 회장 연설에서 던진 질문이다.

금융업에 대한 인식은 시대가 바뀌면서 변화해왔다. 한창 세계화 바람이 불 때는 ‘금융 자유화’만이 경제를 풍요롭게 해줄 것이란 믿음이 지배했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가 닥친 이후엔 금융 개혁을 위해 금융 규제를 가해야 한다는 인식이 퍼졌다. 9년이 지난 지금 4차 산업혁명과 함께 ‘핀테크 열풍’이 불면서 다시 금융 규제 완화에 대한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금융업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정확히 갈피를 잡지 못하는 모양새다.

파이낸셜타임스(FT) 고정 칼럼니스트이자 영국 런던정경대 석좌교수인 존 케이는 저서 《금융의 딴짓》에서 징게일스의 근본적 질문에 답을 제시한다. 그는 2008년 금융위기 원인이 무엇이고, 미래에 같은 위기가 재발되지 않기 위해선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금융위기의 원인을 분석한 책이 대부분 금융시장이 붕괴된 2008~2009년 상황을 긴박하게 기술하는 데 비해 이 책은 좀 더 넓은 관점에서 금융시장 전체의 취약점을 지적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저자는 이 책에서 “금융 종사자들이 천문학적 보수를 받는 이유는 이들이 경제에 그만큼의 기여를 했기 때문인가?”라고 자문한다. 그의 대답은 “전혀 아니다”다.

저자가 제시하는 금융업의 목적은 간단명료하다. 결제를 더욱 쉽게 해주고, 사람들이 소비와 부(富)를 관리할 수 있게 하고, 가장 필요하고 잘 사용될 수 있는 곳으로 자본을 신속하게 배분하게 하는 것이다.

현재 금융업은 이런 근본적 목표에 집중하는 대신 ‘거래 그 자체’에 잠식돼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영국 은행 자산 중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하는 기업을 위한 대출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3%다. 나머지는 대부분 다른 은행에 대한 대출이다. 금융업이 실물경제에 기여하는 몫이 미미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각종 차익거래로 인해 금융시장의 이익이 막대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금융 감독의 사각지대에서 발생하는 규제 차익거래나 세금 게임인 재정 차익거래 등으로 금융권 종사자들은 엄청난 돈을 번다. 이런 ‘게임’은 은행에만 이득일 뿐 나머지 모두엔 비용이 많이 드는 작업이라는 게 저자의 지적이다. 금융당국이 투자자산이나 투자된 기업보다 트레이딩과 관련한 시장 생리를 이해하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붓는 실정이라고 한다.

또 다른 문제는 ‘중개업’이라는 금융업의 본질에서 나온다고 그는 주장했다. 금융회사 대부분은 ‘타인의 돈’으로 일거리를 만들고 수입을 챙긴다. 은행은 저축으로 쌓인 돈을 차입자에게 빌려준다. 펀드매니저는 고객의 돈을 대신 굴린다. 이 관계에서 가장 절대적인 가치는 ‘신뢰’다. 그러나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서 금융 중개인은 대출자 신용 상태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는 점이 여실히 드러났다. “모기지 담보부증권 거래자들은 유가증권에 대해선 알고 있었지만 모기지에 대해선 거의 알지 못했고, 주택시장과 주택 구입자에 대해선 더 몰랐다”는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가 발발하자 금융 서비스 규제와 규제 기관은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역풍이 불면서 각국은 각종 금융 규제를 늘리기 시작했다. 저자는 그러나 “금융 규제는 부족한 게 아니라 오히려 너무 많다”고 말한다.

그는 금융위기의 근원적 요인을 없애기 위해 금융업에 대한 구조개혁이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제시하는 금융의 본령을 되찾기 위한 첫 번째 원칙은 ‘금융 중개고리를 짧고, 간단하고, 직선적으로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최종 사용자보다 중개인 사이의 거래를 우선시하는 지금의 금융문화는 금융 중개비용을 지나치게 높였고 금융 시스템을 불안하게 했다.

또 타인의 돈을 관리하는 모든 금융 중개인은 성실함과 신중함, 책임감을 지니고 행동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금융부문은 허위대출부터 리보(런던은행간금리) 조작까지 광범위한 범죄를 저질러왔다. 10억달러 단위의 벌금이나 보상금을 내는 일은 예사로 여기는 게 현실이다. 저자는 높은 윤리 기준을 지키지 않으면 기업보다 개인에게 직접 민형사상 책임을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런 구조 개혁이 이뤄지지 않으면 대규모 금융위기는 다시 발생할 수 있다”며 “금융 시장은 본래의 역할을 되찾고 신중함과 책임감으로 타인의 돈을 관리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저자는 촘촘한 논리로 524쪽에 달하는 책을 채우고 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숫자나 자료를 책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은 단점이다. 대신 그 자리를 구체적인 사례와 논거로 채웠다. 이 책은 미국에서 출간된 2015년 당시 파이낸셜타임스·이코노미스트·블룸버그 등에서 ‘2015 올해의 베스트북’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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