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도원 / 김일규 / 오형주 기자 ]
■ 정부·여당'증세 추진'5대 궁금증
문재인 정부와 여당이 전격적으로 대기업과 고소득자를 겨냥한 증세 카드를 꺼내든 것은 ‘장밋빛 공약 이행 방안’에 대한 여론의 비판을 수용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그러나 증세가 이뤄진다 해도 실제 세수 효과는 미지수라는 지적이 많다. 경제성장 악화 등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있다. ‘부자 증세’를 명목으로 한 인기영합적(포퓰리즘) 재원 마련 방안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정부·여당의 증세 공론화에 대한 궁금증을 다섯 가지로 정리했다.
증세 논의 왜 앞당겼나
"文정부 지지율 높은 지금이 적기" 판단한 듯
문재인 정부 인수위원회 역할을 한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지난 19일 ‘100대 국정과제’를 발표하면서 5년간 과제 이행에 필요한 178조원은 세입 확충(82조6000억원)과 세출 절감(95조4000억원)으로 조달하겠다고 밝혔다. 소득세·법인세 최고세율 인상에 대해선 “재원 조달의 필요성, 실효 세부담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추진하겠다”고만 했다.
그러나 곧바로 각계의 비판에 직면했다. 특히 세입 확충분의 73%에 달하는 60조5000억원을 ‘최근 세수실적 호조에 따른 세수 전망치’로 채운 것은 지나치게 낙관적인 전망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야당은 “국정과제 이행을 위한 재원조달 방안에 현실성이 없다”고 몰아세웠다.
이에 따라 정부·여당이 정권 출범 초 지지율이 높은 시기가 지나면 증세를 공론화하기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리고, 신속히 현실적인 재원조달 방안 마련에 나섰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구정모 한국경제학회 회장(강원대 경제학과 교수)은 “국정기획위의 발표를 신뢰하기 어렵다는 여론이 커지자 재빨리 증세 논의를 꺼낸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총대를 메고 정부가 지원사격에 나선 것은 청와대의 증세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특히 여당이 꺼낸 증세 방안은 초대기업과 초고소득자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어서 조세 저항을 최소화하는 전략을 쓴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20일부터 이틀간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제기된 증세 관련 논의를 경제관계장관회의를 통해 구체화한 뒤 오는 8월2일 발표 예정인 세법 개정안에 반영할 방침이다.
증세 반대 입장이 분명한 자유한국당과 달리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은 지난 대선 기간 부분적 증세를 공약으로 내건 터라 국회 의석 수로만 놓고 보면 증세론이 다수를 차지할 가능성이 크다.
증세 효과 얼마나
세수 연 3.8조 늘어…공약이행 재원의 10%
여당은 5억원 초과 고소득 구간에 대한 소득세율을 40%에서 42%로, 과세표준 2000억원 초과 대기업에 대해선 법인세율을 22%에서 25%로 높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소득세의 경우 여당 안과 별도로 정부는 38%를 적용받던 과표 3억∼5억원 구간에 세율 40%를 적용하는 안도 추가로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소득세와 법인세율 조정을 통해 발생하는 추가 세수는 모두 연간 3조8000억원 이상일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소득세율 조정은 지난해 기준으로 과표 5억원 초과인 약 4만 명, 3억∼5억원인 5만 명 등 모두 9만 명 정도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 분석에 따르면 세율 2%포인트를 인상할 때 5억원 초과 구간에서 추가로 1조800억원의 세금이 더 걷힐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에 비해 3억∼5억원 구간에서 걷히는 추가 세수효과는 상대적으로 미미한 것으로 추산됐다.
법인세율은 과표에 따라 10%(과표 2억원 이하), 20%(2억∼200억원), 22%(200억원 초과)가 적용되고 있다. 정부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과표 2000억원이 넘는 기업은 116개다. 2000억원 초과 과표에 25%의 세율을 적용하면 추가로 약 2조7000억원의 법인세를 더 거둘 수 있을 것으로 추산됐다.
결국 대기업과 고소득자 대상 증세의 세수효과는 모두 연간 3조8000억원 안팎에 머물 것으로 예상된다. 현 정부 임기 5년 기준으로 19조원이다. 문재인 정부가 공약 이행에 필요하다고 밝힌 178조원의 10%가량이다. 세입 확충으로 조달하겠다고 한 82조6000억원과 비교해도 20% 남짓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세수효과는 크지 않으면서 부작용만 낳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법인세 인상 부작용 없나
법인세율 1%P 오르면 경제성장률 1.13%P 하락
법인세와 소득세율 인상은 부작용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조세 저항을 야기하는 데다 경제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쳐 중장기적으로는 세수가 오히려 감소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에 따르면 법인세율을 1%포인트 인상하면 경제성장률은 최대 1.13%포인트 하락한다. 연구원은 또 법인세수가 극대화되는 최적 법인세율은 23%(지방세 포함)로 보고 있다. 그리스는 2013년부터 법인세율을 20%에서 26%로 인상했지만 기업들의 해외 탈출로 2014년도 총세수가 2012년보다 4.2% 감소했다.
법인세율 인상은 결국 일반 국민에게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김승래 한림대 경제학과 교수와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에 따르면 법인세율 인상의 부담은 주가 하락과 주주배당 감소 등에 따라 주주(74.5%), 소비자(17%), 근로자(8.5%) 등에게 피해가 전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30대 기업은 소액주주 지분율(41%)이 대주주 지분율(38%)보다 높다.
소득세율 인상은 고소득자의 조세 저항을 부를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다. 국내 근로소득자의 46.5%(2015년 소득 기준)가 소득세를 한 푼도 내지 않는 가운데 기존 납세자 부담만 확대하는 정책이어서다. 이준규 경희대 회계·세무학과 교수는 “소득세율 인상은 납세자들의 근로의욕을 저하시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증세 카드 꺼낼까
대주주 주식 양도세 과세 강화
문재인 대통령은 국가재정전략회의 후 “증세는 초고소득층과 초대기업에 한정될 것”이라며 “향후 5년간 중산층과 서민, 중소기업들에는 증세가 전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에 따라 다음달 초 발표되는 내년도 세법개정안에는 부자와 대기업을 대상으로 한 증세안이 대거 담길 것으로 예상된다.
상속·증여세는 이번 세법개정안에서 현재 7%인 신고세액공제를 3%로 줄이거나 아예 없애는 방안이 담길 전망이다.
대주주들이 주식을 팔 때 내는 양도소득세도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현재는 유가증권시장 기준으로 지분 1% 이상을 보유하거나 시가총액 25억원 이상인 대주주는 보유 주식 처분 때 양도세 20%를 낸다. 작년 세법 개정으로 내년 4월부터는 이 기준이 ‘지분율 1% 또는 보유액 15억원’으로 낮아진다. 당정은 이런 대주주 기준을 더 강화할 방침이다. 현재 2000만원을 넘는 금융소득에만 적용하는 종합과세 기준도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
대기업에 대해선 연구개발(R&D) 세액공제폭 하향 조정, 기업소득환류세제 가중치 조정을 통한 과세 강화 등이 포함될 공산이 높다.
중장기적으론 부자들을 대상으로 한 부동산 보유세 인상도 검토될 것이란 예상이 많다. 반면 경유세는 ‘부자 증세’의 취지에 맞지 않고 927만여 대 경유차 이용자의 반발이 거세 인상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조세 형평성에 맞나
근로자 46% 세금 한 푼 안내는데…
전문가들은 ‘보편 증세’ 없이 고소득자와 기업에 대한 ‘부자증세’만 추진하는 것은 조세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소득세제 개편 등 현안을 쏙 빼놓고 일부 고소득층과 대기업을 대상으로 한 증세만 언급한 것은 인기영합적이라는 비판이다. 소득세를 한 푼도 내지 않는 면세자 비율이 46.5%에 달하는 기형적 구조를 외면했다는 이유에서다. 이미 많은 세금을 부담하고 있는 일부 계층·부문에 대한 세금만 늘릴 경우 자칫 조세체계의 구조적 문제를 더 키울 수 있다는 얘기다.
구정모 한국경제학회 회장은 “세율을 손대는 것보다 세원을 폭넓게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지금처럼 누더기 개편이 아니라 가능하면 모두 공평하게 낼 건 내도록 하는 것이 맞다”고 지적했다.
정부와 여당이 강력한 조세 저항에 직면할 수 있는 면세자 축소와 종교인 과세 등 시급한 조세 현안은 외면한 채 손쉬운 대기업 ‘곳간털기’에 나선다는 비판도 나온다. 증세가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과 맞물릴 경우 자칫 기업의 투자여력을 감소시켜 정부가 추진하는 일자리 창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보편 복지를 위해선 보편 증세가 필요한 만큼 결국엔 전반적인 소득세율 인상과 과표 하향조정 등 개편이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임도원/김일규/오형주 기자 black041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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