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비전문가에 맡겨진 신고리 5·6호기의 운명

입력 2017-07-24 17:57  

위원 9명 공론화위원회 출범

공론화위원회 출범한 날…"새 원전 건설 안한다" 못박은 산업부 장관

신고리 원전 운명 결정할 3개월 레이스
공론화위원회, 배심원단 구성·설문조사 등 맡아
정부 "전문가들은 자문위원 형식으로 참여"
위원들 정치 편향성 드러날 경우 파행 우려



[ 이태훈 기자 ]
원자력 및 에너지 비전문가 아홉 명으로 구성된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론화위원회가 24일 출범했다. 공론화위는 신고리 5·6호기 건설 영구 중단 여부를 최종 결정할 시민배심원단의 구성과 운영을 책임진다. 오는 10월 말까지 3개월간 활동하며 공청회와 토론회 등 공론화 과정도 관리한다.

국무조정실은 이날 김지형 전 대법관(59·사진)을 공론화위원장으로 지명하는 등 아홉 명의 공론화위원을 선정, 발표했다. 노무현 정부 때 대법관 출신인 김 위원장은 삼성전자 반도체질환 조정위원장과 구의역 사고 진상규명위원장 등을 지냈다. 대법관 시절 사회적 약자 편에 선 판결을 많이 내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위원장을 제외한 여덟 명의 위원은 인문사회, 과학기술, 조사통계, 갈등관리 등 네 개 분야에서 두 명씩 선정했다. 원전 이해관계자와 에너지 전문가는 처음부터 후보에서 제외했다.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공론화위는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여부를 결정하는 게 아니라 공론화 과정을 설계하고 아젠다를 세팅해 국민과의 소통을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며 “최종 결정은 공론화위가 설정하는 기준에 따라 선정된 시민배심원단이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공론화위가 직접 시민배심원단을 꾸리는 주체가 되는 만큼, 사실상 신고리 원전 5·6호기 운명은 이들 손에 달려 있다고 봐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 의견이다.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5·6호기 공론화위원회가 중립성을 지킬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벌써부터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문재인 대통령이 탈(脫)원전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에 정권 초반에 대통령의 뜻에 반하는 결과가 나올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다. 결론은 공사 중단 쪽으로 정해져 있고, 공론화위는 이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는 작업을 수행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결론 내놓고 ‘구색맞추기’?

문 대통령은 공론화위 출범을 3일 앞둔 지난 21일 “전력 수급계획에 이상이 없는 것으로 확인되면 월성 1호기도 중단할 수 있다”며 “2030년까지 (원전을) 몇 개 더 폐쇄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공론화위의) 공론조사에서 가부 결정이 나오면 받아들이겠다”고 했지만,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에 대한 결론도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추가적인 탈원전 정책을 제시한 것이다.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도 공론화위가 출범한 24일 기자간담회에서 “신규 원전을 건설하지 않고 기존 원전의 수명연장도 하지 않겠다”고 했다.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여부와 상관없이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한 것이다.

이 때문에 벌써부터 “공론화위가 중립적으로 운영될 수 있을지 의심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탈원전 정책의 ‘첫 단추’인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이 취소되면 정부가 추진할 나머지 정책도 타격을 받기 때문이다. 야권 관계자는 “설문조사는 문항을 어떻게 꾸미느냐 등에 따라 같은 현안을 두고 정반대의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며 “정부와 청와대가 대통령의 뜻에 반하는 결과가 나오도록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전문가 배제된 공론화위 구성

공론화위는 이날부터 3개월간 가동된다. 홍남기 국무조정실장은 “10월21일이라는 시한을 넘기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홍 실장은 공론화위 역할에 대해 “신고리 원전 중단과 관련된 설문조사, 시민배심원단 구성 운영, 각종 공청회와 토론회 등을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공론화위가 누구를 시민배심원단에 참여시킬지, 이들을 대상으로 한 공론조사는 어떤 문항으로 꾸밀지 등을 정한다는 것이다.

홍 실장은 공론화위가 에너지 분야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공론화 과정에서 토론회 공청회 등을 통해 전문가들이 충분히 의견을 개진하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하지만 정부가 당초 전문가를 배제한 채 공론화위를 구성하기로 한 만큼, 사실상 방향을 정해놓고 ‘구색맞추기’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공론화위원 선정 과정을 두고서도 “잡음을 회피하기 위해 지나치게 공정성에 치중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정부는 인문사회·과학기술·조사통계·갈등관리 분야의 전문기관과 단체에서 각각 3배수를 추천받아 29명의 1차 후보군을 구성했다. 이후 원전 반대 대표단체인 ‘핵 없는 사회를 위한 공동행동’과 찬성 대표단체인 한국원자력산업회로부터 제척 의견을 받아 총 12명을 제외했다. 정부가 이 중 전공, 성별, 세대 등을 고려해 위원장을 제외한 8명을 뽑았다는 게 국무조정실의 설명이다.

홍 실장은 “원전 찬반 단체의 제척을 거쳤기 때문에 (공론화위 구성의) 공정성에 신뢰를 보낸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공정성 시비 일면?

하지만 앞으로 공론화위 운영 과정에서 위원들의 정치적 편향성 등이 드러날 경우 논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2013~2015년 운영된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는 정치적 성향이 다른 위원들 간에 갈등이 생겨 파행을 거듭했다. 환경단체가 추천한 위원 3명 등 15명의 위원 중 6명이 탈퇴하기에 이르렀다.

원전업계 관계자는 “공론화위와 시민배심원단이 3개월 후 건설 중단 여부 결론을 내리면 돌이킬 수 없다는 게 문제”라며 “나중에 정치적 편향성이나 절차상 문제가 드러나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을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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