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망 같은 최신 기술 접목 겉돌 수밖에
연관산업과 협력, 4차산업혁명 이끌어야
박진우 < 고려대 교수·공학 >
2010년부터 번번이 무산됐던 제4 이동통신사업자 선정이 통신요금 인하 문제와 연결돼 재론되는 분위기다. 제4 이통의 시장 진입을 도와주기 위해서는 비대칭적 규제를 통한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힘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런 방식의 제4 이통 설립은 통신요금 인하 효과는커녕 심각한 국가사회적인 문제를 추가로 발생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통신 3사는 지난 20여 년간 국내 통신시장에서 호황을 누리는 동안에 정보통신 기술과 시장의 변화에 대응해 적극적으로 사업운영 방향을 변화시켜야 했다. 그러나 통신요금 인하 노력은 물론 국내 관련 산업과의 협력 발전을 통해 미래를 준비하는 기업으로서의 역할을 외면해왔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통신 3사는 C(콘텐츠)-P(플랫폼)-N(네트워크)-D(단말기) 정보통신 생태계에서 네트워크를 담당하는 국가의 필수적 기반사업자가 됐음에도 국내 시장에 머물면서 독과점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기업이라는 국민적 공분을 사는 지경에 처하게 됐다.
이렇게 된 배경에는 통신시장의 조정자 역할을 맡아온 정부의 책임도 크다. 2000년 즈음부터 정부는 세계무역기구(WTO)의 공정무역 위반을 이유로 통신 3사의 장비와 소프트웨어 솔루션 구매시장을 개방하도록 해 결국엔 통신사가 무차별적인 저가 해외장비 도입 경쟁과 요금 경쟁에 빠지도록 하는 데 일조한 측면이 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서 통신 3사는 가격과 성능이 월등히 좋은 미국, 유럽, 중국 등으로부터 통신장비와 소프트웨어 솔루션을 구매해 통신망을 채워가며 연구개발과 제품개발에서 손을 뗐다. 이로써 국내 통신시장에서 소외된 국내 연구개발 노력과 통신장비 및 소프트웨어 솔루션 산업은 위축을 거듭해 피폐화되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다.
통신 3사 간 경쟁은 해외장비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처지에도 불구하고 통신망 사업의 정보 관리를 이유로 상호 배타적으로 통신망을 구축, 세계에 유례없는 네트워크 중복 설치로 투자가 낭비되는 상황이다. 해외기술과 제품으로 채워진 통신망 위에서는 최신 통신망 기술인 가상망, 복합 클라우드컴퓨팅 등 어떤 시도도 겉돌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주파수 경매, 주파수 이용, 사업운영 등으로부터 기금 징수에만 몰두하는 듯한 국가 정보통신 정책은 그 근간부터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기존 이통사업자와 사업 형태가 동일한 제4 이통 사업자가 나타날 경우를 상상해보라. 유리한 주파수 배정, 사업기금의 납부 감면이란 비대칭적 특혜를 일시적으로 부여한다고 해서 낮은 통신요금을 전제로 한 제4 이통 사업이 국민과 국가 경제에 이바지할 수 있겠는가. 특히 음성서비스 시대를 지나 인공지능, 클라우드, 사물인터넷 등 혁신적인 데이터 서비스가 사업의 중심이 되는 현 시점에서 요구되는 투자비용을 어떻게 마련할 수 있겠는가.
교각살우(矯角殺牛)의 범실은 피해야 한다. 정보통신의 근간을 훼손할 수 있는 무모한 시도는 지양해야 한다. 이미 통신시장의 독과점이란 비정상적 상황을 해소하기 위해 가상이동통신망 사업자(MVNO), 즉 알뜰폰 사업제도가 시행돼 요금 인하 효과를 거두고 있다. 일본에서도 1500만 명 이상의 가입자 유치로 효과가 입증된 제도다. 다만 MVNO사업이 기존 통신사업자 통신망의 여분을 사용하는 특성으로 인한 의존성, 그리고 소규모 기업이어서 투자여력이 부족해 기대보다 부진한 점 등이 있기에 사업환경 개선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통신사가 지난 시절의 시장상황이 지속되기를 기대해서는 곤란하다. 국민과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되는 통신사업, 4차 산업혁명의 동력원으로 국내 관련 산업과 상생하는 기업으로서 해외로 뻗어나가는 원래의 역할과 기능을 되찾아야 한다. 이에 정부는 ‘갑’의 역할에 머무르던 과거 정보통신 관행을 단절하고 세계 정보통신기술(ICT) 시장 안에서 한국 정보통신 생태계의 위태로운 위치를 파악해 함께 극복해내는 협력관계를 조성하는 역할을 하기를 기대한다.
박진우 < 고려대 교수·공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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