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용 부담에 참여 주저하던 중소형 운용사들 관심 커져
의결권 자문사 전략 변화 불가피…"보고서 차별화가 관건될 듯"
[ 김우섭 기자 ] 한국거래소 출자기관인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이 기업 합병이나 이사 및 감사 선임, 배당 등 주주총회 주요 안건에 찬성할지 여부를 판단한 의결권 자문 결과를 자산운용사들에 무료로 공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의결권 자문 대행 서비스를 이용하기 어려웠던 중소형 자산운용사들의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가 의결권 행사지침) 참여가 잇따를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500개 기업 의안 무료 분석
26일 기업지배구조원에 따르면 이 회사는 이르면 내년 기업들의 주총 시즌부터 무료 의안 분석 서비스를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기업지배구조원은 한국거래소와 금융투자협회 등이 분담금을 내 운영하는 곳이다. 기관투자가 대상 의결권 자문 사업과 기업의 사회적 기여 정도를 판단하는 ‘ESG(기업의 환경·사회·지배구조) 평가’ 등을 하고 있다.
대상 기업은 전체 상장사 2568개 가운데 투자자들의 관심이 높은 400~500여 곳이다. 기업지배구조원은 의안 분석 결과를 국내 기관투자가에 직접 전달하거나 홈페이지에 게시할 예정이다. 국내 주요 기업의 의결권 자문 결과를 모두 무료로 제공키로 한 건 기업지배구조원이 처음이다. 조명현 기업지배구조원장(고려대 경영학과 교수)은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이끌고 있는 기업지배구조원의 공공성을 높이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그는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주도하고 있는 기업지배구조원이 돈을 받고 의결권 자문 사업을 하는 게 이해관계 상충의 소지가 있다는 일부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기업지배구조원이 ‘무료 의결권 자문’을 추진하게 된 배경엔 문재인 정부의 대선 공약 중 하나인 스튜어드십 코드를 조기에 정착시키기 위한 의도도 깔려있다. 지난해 12월 도입된 스튜어드십 코드 참여를 선언한 기관투자가는 네 곳에 불과하다.
업계에선 ‘비용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주저했던 중소형 주식형펀드 운용사들의 참여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자체 리서치 인력이 부족한 중소 운용사일수록 의결권 자문사에 의존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의결권 자문 계약을 체결한 자산운용사들은 보통 투자 기업당 10만~20만원 안팎의 자문 수수료를 낸다. 수십~200여 개의 기업에 투자하는 자산운용사들이 스튜어드십 코드 원칙을 충실히 이행하려면 연간 수천만원의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전체 자산운용사와 투자자문사(329개) 중 직원 30명 이하 소규모 회사가 275곳(83.5%)에 달한다.
“의결권 자문업계 판도 변화”
업계 ‘맏형’격인 기업지배구조원이 무료 의결권 자문 서비스를 제공키로 하면서 의결권 자문사들의 생존 전략도 달라질 전망이다. 기업지배구조원은 의결권 행사에 필요한 최소한의 의결권 분석 결과와 간단한 설명을 보고서에 첨부할 계획이다. 다만 좀 더 상세한 분석을 원하는 곳에는 다른 의결권 자문업체로부터 유료 서비스를 받도록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국내에서 활동하는 의결권 자문 업체는 기업지배구조원 외에 대신지배구조연구소, 서스틴베스트,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세 곳이 있다. 세계 의결권 자문시장의 65%를 차지하고 있는 글로벌 1위 자문사인 미국의 ISS도 연간 100건가량 의견을 내놓고 있다. 의결권 자문사들은 기본적으로 주총 안건을 분석한 뒤 찬반 여부를 알려주는 대가로 수수료를 받는다. 합병·사외이사나 감사위원 선임·정관변경·재무제표 승인 등 주총에 올라오는 모든 안건이 분석 대상이다. 의결권 자문사의 한 임원은 “기업지배구조원이 무료 서비스를 시작하면 중소형 운용사들이 유료인 의결권 자문사를 찾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주총 시즌에 보고서를 어떻게 차별화할 수 있을지 고민을 떠안게 됐다”고 말했다.
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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