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정 전력수급계획을 토대로 한 에너지정책 방향도 공론조사해야
정동욱 < 중앙대 교수·에너지시스템공학 >
일반적으로 공론조사는 시급성을 요하는 사안보다 장기적이고 선택이 가능한 정책의 설정 과정에서 민의를 취합·정제해 반영하는 데 보다 유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도 공론조사를 신고리 5·6호기를 둘러싼 갈등 조정의 방편으로 활용하기로 한 이상, 그 후속으로 장기적인 에너지 정책을 위한 공론조사를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탈(脫)원전을 하더라도 실질적으로 원전을 대체할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의 확대와 이로 인한 국제적 온실가스 감축 의무 준수 문제, 감내할 수 있는 전기요금 상승폭 등 에너지 정책 방향에 대해 민의를 묻는 공론조사가 다시 필요하다. 이런 거시적인 논의가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 역할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따라서 김지형 공론화위원회 위원장이 신고리 5·6호기 공론조사가 탈원전 정책과 등식 관계에 있지 않다고 한 것은 바람직하다. 즉 이번 공론조사는 신고리 5·6호기 건설로 인한 지역의 안전에 대한 우려와 건설 중단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손실 및 그 수인(受忍) 가능성을 초점으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공론화위원회는 건설 여부에 대한 결론이 아니라 권고안을 도출하겠다고 한다. 어떤 권고안이 나오든 공론조사 결과가 가져올 영향은 작지 않다. 만약 신고리 5·6호기 건설 유보로 권고안이 나온다면 이는 탈원전에 대한 민의를 확인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신고리 5·6호기는 가장 최신 기술을 적용했다. 지금까지 건설된 원전 중 가장 안전하게 만든 원전이다. 정부의 탈원전 정책 방향은 추가 원전은 없으나 기존 원전은 가동 연한까지 운용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신고리 5·6호기 이전 노형으로 가장 최근에 준공된 원전은 2015년 7월 준공한 신월성 2호기인데, 신고리 5·6호기는 신월성 원전보다 안전기준이 상향돼 설계된 발전소다. 예를 들면 내진 기준이 신고리 5·6호기는 규모 7.0 지진에도 견디도록 설계된 반면 신월성 2호기는 규모 6.5 수준이다. 지진 우려로 건설을 중단한 원전보다 낮은 기준의 원전을 30년 넘게 유지하는 것이 합당한지 민의를 물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탈원전이 보다 빠르게 진행돼야 한다는 결론이 나올 수도 있다. 반대로 신고리 5·6호기 안전성이 지역의 우려를 해소할 수 있다는 객관적인 자료가 확립되고 공론이 이를 뒷받침해 신고리 5·6호기 건설 추진이 타당하다는 결론에 이를 수도 있다. 이 경우에는 우리나라 원전의 기술력과 안전성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공론조사를 통해 객관적으로 파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정부는 ‘원전 제로(0)’를 목표로 할 것인지, 노후 원전을 안전성이 강화된 신규 원전으로 대체하는 전략을 취할 것인지에 대한 거시적 공론조사를 해야 할 것이다. 절충적 권고안으로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지속하되 고리 2 또는 3·4호기가 영구정지할 때까지 공기 연장을 하거나, 노후 원전을 조기 폐쇄하는 방안도 예상할 수 있다. 이런 대안 역시 준공 시기, 조기 폐쇄 시점과 범위 등 여러 논점이 있고 결국 적정한 전력수급 계획의 문제이기에 에너지 정책 틀 내에서 공론조사가 필요한 것은 마찬가지다.
공론조사에 대해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우려의 시각이 많다. 하지만 주사위는 던져졌다. 정부와 김 위원장 공언대로 공정성이 담보되기를 바란다. 그렇게 된다면 에너지 정책에 대한 공론화는 더욱 의미를 가질 것이다.
정동욱 < 중앙대 교수·에너지시스템공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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