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첨단 유전자기술, 미국서 실험하고 일본서 허가받는 현실

입력 2017-08-03 17:59  

한국과 미국 과학자들이 ‘유전자 가위’ 기술을 이용해 세계 최초로 태아(胎兒)의 유전질환을 치료하는 데 성공했다고 국제학술지 네이처가 지난 2일 발표했다. 유전병을 가장 이른 시기에 치료할 수 있는 길을 연 것이다. 기초과학연구원 유전체교정연구단이 미국 오리건보건과학대 연구진과 협업으로 이뤄낸 쾌거다. 유전자 가위는 유전체(genome)에서 DNA 염기서열의 손상된 부위를 잘라내거나 새로운 걸 끼워넣는 기술로, 국내 업체가 원천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성과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씁쓸하다. 기술을 빌려 주고도 정작 연구 핵심과정인 인간 배아 실험은 미국에서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엄격한 생명윤리법 탓에 국내에선 조직과 기관으로 분화되기 직전 단계인 배아의 연구가 금지돼 있어서다. 줄기세포를 이용한 유전자 치료도 제한돼 있다. 기술력을 갖춘 한국이 규제에 묶여 제자리걸음을 하는 사이 경쟁국들은 우리 기술을 활용해 앞서가고 있는 것이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에 따르면 바이오 분야 규제는 1163건에 이른다. 박근혜 정부는 유전자 치료제 등 신(新)산업 분야 규제를 푼다고 했지만 성과가 미미했다. 핵심 규제인 생명윤리법은 손도 못 댔다. 미국 일본 등에선 소비자들이 편의점에서 알츠하이머와 파킨슨병 등 주요 질환 유전자 검사 키트를 살 수 있지만, 국내에선 혈당 등만 가능하다. 연구를 위해 미국에 가고, 국내에선 안 나오는 치료제 허가를 얻으려 일본으로 ‘규제 피난’을 떠나는 것이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주요국들은 유전자 관련 분야를 선점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규제를 풀고 있다. 특히 일본은 효과가 입증되지 않아도 부작용만 없으면 줄기세포 및 유전자 치료제 판매를 허용한다. 한국 기업이 개발한 유전자 기술이 일본에서 먼저 상용화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지만, 국내에선 관련 법 개정이 요원하다. 경쟁국들이 질주하고 있는데 한국은 수년째 생명윤리 논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답답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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