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친이 직접 숲길 내면서 느낀 점 '환상숲' 이야기에 오롯이 담겨
"용암이 흐르다 바위가 된 척박한 땅에 뿌리내린 나무들, 우리네 삶과 닮았죠"
아무도 관심 없었던 제주의 숨은 숲, 어느새 연 10만명 찾는 관광지로 탈바꿈
[ 고은이 기자 ]
이 숲의 나무 뿌리는 유달리 넓적한 것이 많다. 용암이 흐르다 바위가 된 땅. 깊이 뿌리내릴 흙이 없기에 뿌리에 더 힘을 주며 자란 것이다. 사람이 바람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 다리에 힘을 줘 버티는 것과 마찬가지다. 어떤 나무는 돌과 뿌리가 한 몸 같다. 아파도 결국 상처가 굳은살이 되도록 끌어안고 사는 우리네 삶과 닮았다.
제주의 곶자왈 공원 ‘환상숲’은 이야기를 품은 숲이다. 6년 전 이형철 환상숲 대표가 숲 이야기를 들려주며 입장료를 받아보겠다고 했을 때 주위 사람들은 혀를 찼다. ‘주변에 널린 게 곶자왈(제주 원시림)인데 누가 돈 내고 오겠냐’는 것. 하지만 숲은 어느새 제주의 명물이 됐다. 지난해 방문객은 10만 명까지 늘었다. 교육·체험농장의 대표적 성공사례로 불리는 환상숲의 이지영 숲지기(부대표)를 인터뷰했다. 환상숲 공원을 꾸린 경험과 ‘농장에 스토리를 입히는 법’에 대해 들었다.
▷어떤 생각으로 숲을 개방했습니까.
“이 숲은 아버지(이형철 대표)가 23년 전 사둔 땅입니다.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던 숲이었죠. 처음엔 아버지가 돈을 받지 않고 재미삼아 숲 안내를 했습니다. 그러다가 숲을 누구나 와서 볼 수 있는 곳으로 꾸미고, 숲 해설을 충실히 하되 입장료를 받으면 어떨까 했습니다. 유료화하면 방문하는 사람이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늘었습니다. 지금은 농촌진흥청 지정 농촌교육농장, 대한민국 100대 스타농장이 됐습니다.”
▷이 숲의 매력이 무엇인가요.
“대개 숲에 오면 식물 이름이 뭐냐고 묻는 분이 많습니다. 하지만 저 역시 식물을 다 알지 못하고 가르쳐 드려야겠다는 생각도 안 합니다. 우선 숲을 찬찬히 걸어보라고 합니다. 이 나무는 어떻게 생겼는지, 척박한 땅에 어떻게 뿌리내렸는지, 환경에 어떻게 적응했는지를 중점적으로 보는 게 좋다고 말씀드립니다. 저는 이런 숲 이야기를 읽어주는 사람입니다.”
▷예를 들면 어떤 얘기인가요.
“저희 숲엔 ‘갈등의 길’이 있습니다. 갈등(葛藤)의 어원은 칡(葛)과 등나무(藤)입니다. 칡은 오른쪽으로 나무 줄기를 감고 올라가는데 등나무는 왼쪽으로 감고 올라갑니다. 서로 화합하지 못하고 얽히고설킨 모습을 갈등이라고 하죠. 숲에서도 칡과 등나무는 서로 살기 위해 아등바등합니다. 갈등 끝에 죽기도 합니다. 죽어서는 부엽토를 만들어 다른 식물에게 도움을 줍니다. 숲도 사람들 삶처럼 갈등을 겪지만 죽어서는 결국 상생하는 겁니다.”
▷그런 스토리는 어떻게 만듭니까.
“아버지가 직접 숲에 길을 내면서 느낀 것들이 환상숲의 이야기가 됐습니다. 제가 그 과정을 도왔습니다. 원래 서울 지역아카데미에서 농촌교육농장 컨설팅 일을 했습니다. 환상숲 스토리는 아버지 부탁으로 제주에 내려와 20여 일 동안 함께 제작한 것입니다. 전국의 다양한 농장에서 서로 다른 품목과 주제로 여러 프로그램을 구성해본 경험이 좋은 훈련이 됐습니다.”
▷환상숲은 교육농장의 좋은 모델로 꼽힙니다.
“처음과 달리 지금은 학교 대상 교육농장 프로그램을 10회 등 다회차로 꾸립니다. 진화시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인근 보성초 금악초 아이들은 매달 환상숲을 방문합니다. 창의, 인성교육부터 학교폭력 예방 프로그램, 진로 프로그램까지 운영합니다. 학년별, 계절별 프로그램도 마련했습니다. ”
▷농장에 스토리를 엮는 방법에 대해 조언해주십시오.
“스토리를 짜려면 본인이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작목에 관심이 있고, 무슨 이야기를 할 때 가장 편한지를 생각하는 게 중요합니다. 또 정리하는 습관이 있어야 합니다. 단순히 안다고 생각하는 내용도 따로 정리하면 또 새롭게 다가옵니다. 그때그때 내가 기르는 작목이나 농장에서 이뤄지는 일을 메모하는 게 좋습니다. 이 메모를 바탕으로 다른 사람과도 이야기를 많이 나눠야 합니다.”
▷농촌이 달라지고 있는 걸 느낍니까.
“농촌에서 체험도 하고 숙박도 하고, 직판도 하고 가공도 하면서 농부들도 예전과는 달라지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많이 보입니다. 하지만 방문객은 실컷 체험하고 난 뒤 자녀들에게 이런 말을 남기고 갑니다. ‘힘들지? 그러니까 너도 공부 열심히 해!’ 이런 인식 자체부터가 잘못된 것 같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농부나 어부부터가 자신의 일이 얼마나 가치있는 것인지 알아야 합니다. 환경을 보호하고 건강한 먹거리를 책임지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또 그들이 존경받아 마땅하다는 것을 학교 현장에서도 가르쳐야 하고요. 이러면 농어촌을 기피하는 일이 줄어들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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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FARM 고은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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