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명동 노른자땅' 국민은행 본점 인수전… 먼 산만 본 국내 기관투자가

입력 2017-08-10 18:20  

운용역 임기 짧고 경직된 분위기
'고위험 고수익' 투자 엄두 못내



[ 김대훈 기자 ] “국내 기관이 투자하려 했다간 내부 심의 단계에서 반대에 부딪혔을 게 뻔합니다.”

최근 이뤄진 서울 명동 국민은행 본점(사진) 인수전에 대한 부동산·금융업계 관계자의 관전평이다. 이번 거래는 외국계 투자회사가 대거 참여하면서 흥행에 성공했다. 단독으로 인수전에 참여한 국내 운용사는 한 곳도 없었다. 연기금 공제회 등 국내 기관투자가의 투자 약정을 이끌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적격인수후보(쇼트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투자자는 최종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미국계 부동산 투자회사 안젤로고든을 비롯해 미국 투자은행(IB) 모건스탠리, 사모펀드(PEF) 운용사 스탠다드차타드프라이빗에쿼티(SC PE), 싱가포르 부동산 회사 애스콧 등 모두 외국계였다.

매각 측은 초기부터 연면적 3.3㎡당 3000만원의 높은 가격을 요구했다. 그런데도 외국계 투자자가 입찰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은 기존 건물을 허물고 고급 호텔과 상업시설로 재개발할 경우 큰 차익을 거둘 수 있다는 계산에서다. 이 건물은 국내에서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명동역 인근에 자리잡고 있다. 물론 거액의 건설비가 들어가고 호텔업의 부침이 크다는 점은 위험(리스크) 요인이다. 수익성이 높은 만큼 손실 위험도 큰 ‘기회추구형(opportunistic) 투자’로 분류되는 이유다.

안젤로고든은 서울 강북권 부동산 거래 사상 최고 수준인 연면적 3.3㎡당 3120만원을 써내 경쟁자들을 물리쳤다. 인근 롯데호텔이나 웨스틴조선과 맞먹는 고급 호텔을 입점시킬 계획이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안젤로고든은 강남 엘루이호텔 재건축 등 국내에서 가장 어려운 부동산 프로젝트에 주로 투자해왔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같이 난도는 높지만 그만큼 수익률도 높은 기회추구형 투자를 한국 투자자들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상업용 부동산 투자 전략은 투자 위험도와 기대수익률에 따라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이미 지어진 도심 핵심 지역 오피스 빌딩에 투자하는 ‘코어 전략’, 기존 건물을 개·보수하는 ‘가치 증대형(value-add) 전략’, 그리고 건물을 아예 허물고 재개발하는 ‘기회추구형 전략’이다. 국내 기관투자가는 손실 위험은 작지만 그만큼 수익률도 낮은 코어 전략 위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내 기관이 어려운 빌딩 투자를 꺼리는 첫 번째 이유는 최고투자책임자(CIO) 등 핵심 운용역의 임기가 2~3년으로 짧기 때문이다. 초기 투자비 때문에 수년간 손실이 불가피한데 이 기간을 감내하지 못한다는 설명이다. 단 한 건의 투자 손실도 용납하지 않는 경직된 분위기도 문제로 지적된다. 한 공제회 대체투자 담당자는 “건별로 손실을 보면 운용역이 감사원 등으로부터 감사에 시달려야 한다”고 털어놨다. 전체 포트폴리오 관점에서 투자를 바라보는 문화가 형성되지 못한 탓이다.

한 국내 부동산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여러 화기를 보유한 상대(외국계)를 국내 기관은 권총만으로 상대하는 격”이라며 “이대로라면 외국 투자자들이 국내 부동산시장에서 막대한 투자 차익을 거두는 것을 국내 투자자들은 지켜만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대훈 기자 daep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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