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걸 좋아하는 요즘 세대
단시조야말로 관심 끌 수 있어
작은 생명이 들려주는 순수한 말들을 시어로 포착
[ 심성미 기자 ]
“시조는 국어가 갖고 있는 운율과 아름다움을 가장 잘 표현해낼 수 있어요. 짧은 글을 선호하는 젊은 세대도 충분히 좋아할 만한 형식을 갖추고 있습니다.”
한국문인협회 이사장인 문효치 시인이 시조집 《나도바람꽃》(시월)을 냈다. 1966년 등단 이후 50여 년간 자유시만 써온 문단계 원로인 문 시인이 쓴 첫 시조집이다.
10일 서울 목동 한국문인협회 사무실에서 만난 문 시인은 “요즘 젊은이들이 짧은 글을 선호하는 만큼 단(短)시조야말로 젊은 세대가 좋아할 잠재력을 지닌 것”이라고 말했다. 근대문학의 시작과 함께 시조는 주류의 자리에서 내려왔지만 시조 특유의 운율과 짧은 길이 등의 특징은 젊은 세대의 관심을 끌 잠재력을 여전히 갖고 있다는 설명이다.
시조집에 실린 42편의 작품은 3·4조의 운율, 3장 6구의 길이 등 평시조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반세기 동안 자유시를 쓰던 시인이 시조라는 형식에 갇혀 시를 쓰는 게 답답하지 않았을까. 문 시인은 “그럴 거라 생각했는데 정반대였다”고 했다.
“한국어의 단어에 조사까지 붙이면 대개 세 음절 내지 네 음절이 됩니다. 3·4조인 시조와 어울리는 리듬을 지닌 거죠. 시조야말로 우리 정서를 담아내기에 이상적 형태라고 생각합니다.”
문 시인이 이번 시조집에서 주된 소재로 삼은 것은 자연이다. 시조집 중 제1장에 수록된 시조는 모두 생소한 풀 이름을 제목으로 달았다. 대표적인 게 ‘꼭두서니’다. 붉은 색 염료를 만드는 원료인 꼭두서니의 뿌리가 햇빛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냐는 상상력을 바탕으로 지은 시다. ‘햇빛이 내려와/스며든 땅속에서//굽고 끓이면서/푸지게 익히더니//일궈낸 저 색깔은/하느님의/몸빛인가’ (‘꼭두서니’ 전문)
문 시인은 “요즘은 시에 작은 것들을 불러 모으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고 했다. “작은 생명에도 아름다움이나 신비함, 존엄성이 존재합니다. 그들은 인간처럼 숨기는 데 익숙하지 않고 진실하게 말합니다. 가장 순수한 말을 시로 포착하려 했습니다.”
공통된 소재는 자연이지만 각 시조는 다양한 정서를 표출한다. ‘바람이 시작된 곳/바다 끝/작은 섬//물결에나/실려 올까/그 얼굴 그 입술이//한 생애/불어오는 건/바람 아닌 그리움’이라고 노래하는 표제작 ‘나도바람꽃’에서는 바람을 소재로 채워지지 않는 그리움의 정서를 표현했다.
“월북자의 아들이다 보니 어렸을 적 늘 ‘왕따’를 당했어요. 혼자 터덜터덜 학교를 오가는 길이 심심해서 산길에 우두커니 앉아 책보를 내려놓고 개미나 풀, 송사리 같은 것들이랑 놀면서 하루를 보냈던 기억이 있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그 벌레나 풀들이 모두 내 친구였던 거예요. 그들의 말을 듣고 적은 것이 요즈음의 제 시이니 자연은 제 평생 친구라 할 수 있습니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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