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낮 없는 해변가 버스킹, 휴가지 '민폐킹'

입력 2017-08-11 19:15   수정 2017-08-12 08:55

해변에서 앰프 틀고 공연…자정 넘게 굉음 터져나와
주민·투숙객들 민원 폭주

버스킹 금지 법적 규정 없어
경찰 출동해도 계도만 할뿐…해외선 버스킹 등록제 도입



[ 성수영 기자 ] 지난 5일 밤 제주 월정리의 한 해변가. 기타와 앰프(음향 증폭장치)를 동원해 ‘버스킹(길거리 공연)’하던 연주자들과 현지 주민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주민 김모씨(57)는 “시끄러워 잠을 못 자겠다”며 “육지 사람(비제주인을 일컫는 말)들이 제주까지 와서 뭐하는 짓이냐”고 소리쳤다. 술에 취해 얼굴이 달아오른 이들 연주자는 “말이 심하다”며 언성을 높였다. 김씨는 “술 마시고 떠드는 건 몰라도 앰프와 스피커까지 가져오는 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울분을 토했다.

버스킹이 지방 휴가지에까지 무분별하게 침투하면서 현지 주민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스피커 소리로 잠을 못 이루는 주민이나 인근 호텔 투숙객 등이 대표적이다. 부산 해운대경찰서는 여름 성수기인 지난달 29일과 30일 단 이틀 동안 17건의 소음 신고가 접수됐다고 밝혔다. 7월 한 달 동안 접수된 해운대해수욕장 버스킹 소음 민원만도 73건에 달한다.

버스킹이란 말은 ‘길거리에서 공연하다’는 의미의 영단어 ‘버스크(busk)’에서 유래했다. 수년 전 슈퍼스타K 등 오디션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은 뒤부터 서울 홍익대 앞을 중심으로 급속히 확산됐다. 서울 마포구청을 비롯한 지방자치단체들도 “길거리 공연을 관광자원으로 키우겠다”며 호응했다.

휴가철 ‘원정 버스킹’도 인기를 끌고 있다. 관광객들에게 마이크와 앰프 등 장비를 빌려주는 ‘버스킹 대여점’까지 생겨날 정도다. 주로 부산·제주와 같은 유명 휴가지의 음향장비 대여점들이 버스킹 대여점이란 이름을 내걸고 성업 중이다. 이들은 장비에 따라 3만~10만원을 내면 오디오 케이블과 마이크 등을 세트로 묶은 ‘버스킹 세트’를 24시간 동안 대여해 준다. 부산의 한 버스킹 대여점 관계자는 “7~8월에는 휴가지에서 추억을 쌓으려는 관광객 덕에 예약이 밀릴 정도”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소음으로 인한 갈등이다. 버스킹을 금지할 법적 규정이 사실상 없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소음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은 현장에서 오후 11시 이후에는 공연을 자제하도록 계도만 할 뿐 법적인 조치를 할 수 없다. 현행 소음·진동관리법상 공연 소음에 대해서는 형사상 처벌 법규가 없고 자치단체 조례에도 구체적 시간·장소 등 기준 제한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민원이 폭증하자 자구책으로 ‘버스킹 금지’를 내건 지자체도 나왔다. 부산 중구 광복동은 인근 상가와 주택가에서 소음 민원이 제기되자 지난 6월 주요 버스킹 구간에 거리 공연을 사실상 금지했다. 부산 송도해수욕장에서도 비슷한 시기 거리 공연이 금지됐다.

버스킹을 허가제로 전환하자는 의견이 대안으로 제시된다. 최소한의 검증에 따라 함량 미달 공연가들을 걸러내자는 취지다. 영국 런던과 호주는 버스킹 등록제를 시행하고 있다. 버스커들은 정부에서 발급하는 ‘버스커 등록증’을 가지고 있어야 거리 공연이 가능하다.

일각에서는 길거리 공연을 규제하기보다는 문화로 인정하고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인디밴드 음악가 이강희 씨(28)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람블라스 거리 등 외국 유명 관광지에서는 길거리 공연을 관광자원으로 키우고 있다”며 “주변 주민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한도 내에서 적절한 수준의 규제를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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