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성미 기자 ] 45억 년이라는 지구의 역사 중 호모 사피엔스의 역사는 지극히 짧다. 호모 사피엔스는 불과 20만 년 전 동아프리카에서 진화를 시작했다. 최근 호모 사피엔스가 어떻게 지금과 같은 문명을 이루고 지구의 정복자가 됐는지를 밝히는 책이 쏟아지고 있다.
김성도 고려대 언어학과 교수는 《언어인간학》에서 그 답을 ‘언어’에서 찾는다. 그는 “신체적 우월성이 떨어지는 호모 사피엔스는 다양한 언어로 소통했기에 살아남았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음성언어뿐 아니라 시각언어, 문자언어로 언어의 외연을 확장한다. 그는 3만5000년 전을 기점으로 동굴벽화 등 화려한 이미지를 만들어내기 시작한 인간을 ‘호모 그라피쿠스’라고 명명한다. 그러다 시각언어는 효용성의 이유로 문자 언어에 점차 자리를 내어줬다. 이른바 ‘호모 스크립토르’의 등장이다. 물건의 수량을 세는 회계 등 상업적 기능에서 비롯된 문자는 이후 권력과 필연적 관계를 맺었다.
말하는 인간을 뜻하는 ‘호모 로쿠엔스’에 이르러 동물 언어가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것들을 일상적으로 표현해낸다. 저자는 “네안데르탈인에 비해 어떤 기술적·신체적 우월성도 갖지 못했던 호모 사피엔스는 소리를 생산하는 완결된 성대를 가지고 있었다”며 “이를 통해 구사할 수 있었던 언어로 인류의 조상으로 자리매김했다”고 말한다.
책 후반부에서 저자가 주목하는 건 디지털 문명을 활용하는 ‘호모 디지털리스’다. 그는 “과학기술의 발달과 함께 새롭게 탄생한 디지털 문명은 소통에 관한 모든 방식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며 “디지털 문명 속에서 호모 그라피쿠스와 호모 스크립토르, 호모 로쿠엔스로서의 인간 본성이 중첩돼 발현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21세기북스, 360쪽, 1만8000원)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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