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증거 없는 '박근혜-이재용 독대'… 재판부 '청탁 유무' 판단이 명운 가른다

입력 2017-08-20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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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 선고 앞둔 삼성 재판
178일 달려온 1심 재판…25일 선고에 관심 집중

재판부 안종범 수첩 등 간접증거 인정이 변수
핵심인 '뇌물 공여' 무죄 땐 다른 혐의도 '흔들'
조급함 드러낸 특검, 구형후 의견서 3건 제출



[ 고윤상 기자 ] ‘세기의 재판’이 정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삼성그룹 주요 경영진의 뇌물 공여 혐의에 대한 1심 선고 공판이 이번주 금요일(25일) 열린다. 2월28일 재판이 시작된 지 178일 만이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특검의 성과를, 삼성은 기업의 운명을 건 결전의 순간이다. 재판 결과는 박근혜 전 대통령 재판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부정한 청탁 인정 여부가 핵심

특검은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에게 삼성 경영권 승계 및 지배구조 개편을 도와달라고 부정한 청탁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대가로 정유라 씨 승마훈련 지원 및 미르·K스포츠재단, 영재센터 지원 명목으로 298억2535만원(약속 433억여원)의 뇌물을 공여했다는 게 주요 기소 내용이다.

특검은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과 2014년 9월15일, 2015년 7월25일, 2016년 2월15일 세 차례 비공개 단독 면담에서 부정한 청탁을 했다고 본다. 삼성이 최씨를 지원하고, 최씨는 박 전 대통령에게 부탁하고, 박 전 대통령은 삼성의 ‘승계 작업’을 돕고자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 부당하게 개입하도록 실무진에게 지시했다는 얼개다.

삼성은 특검이 주장하는 승계작업 자체가 ‘허구 프레임’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이 부회장과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 등은 경영권 승계는 지분율 싸움이 아니라 기업가로서의 신뢰를 확보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실관계에 대한 기본적 인식이 다르다 보니 양측 주장은 재판마다 갈렸다. 하지만 특검이 간접 증거만 제시할 뿐 공판 과정에서 핵심 직접 증거인 ‘스모킹 건’을 내놓지 못했다는 게 법조계의 일반적인 평가다. △승계 작업을 위한 부정한 청탁 여부 △박 전 대통령의 구체적 지시 내용 △이 부회장 개입 여부 등은 직접 증거가 나오지 않았다는 얘기다. ‘증거가 차고 넘친다’는 특검의 호언장담이 빛바랜 상황이다.

특검이 지난 18일 재판부에 의견서 세 건을 제출하며 마지막 호소에 나선 것도 간접 증거를 엮어 혐의를 증명하려는 조급함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의견서 내용은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기존 주장을 되풀이하는 내용으로 전해졌다. 삼성 측 변호인단도 이에 대응해 당일 오후 한 건의 의견서를 제출했다.

◆“뇌물 무죄면 특검 논리 깨져”

이 부회장에게 적용된 혐의는 모두 5가지다. 박 전 대통령과 최씨에 대한 뇌물 공여액은 총 433억2800만원이다. 이 중 실제 집행된 298억2535만원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혐의를 적용받는다.

삼성 측이 최씨 소유인 독일의 코어스포츠에 용역비 등으로 지급한 78억9430만원에 대해선 특가법상 재산국외도피 혐의가 추가됐다. 정씨 승마훈련 비용 77억9735만원은 말의 구입 출처를 덮으려 했다는 이유로 범죄수익은닉 혐의까지 적용됐다. 특검의 수사 결과와 다른 이야기를 국회 청문회 때 했다며 추가한 국회 위증 혐의도 있다.

특검은 앞서 결심 공판에서 이 부회장에게 징역 12년을 구형하면서 재산국외도피의 법정 최고형이 징역 10년 이상이라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특검은 중형 구형 배경으로 재산국외도피죄를 내세웠지만 핵심은 뇌물공여죄다. 1억원 이상의 뇌물을 공무원에게 공여한 자는 최대 징역 5년에 처한다. 징역 5년을 선고하기 위해선 적극적으로 관여한 정황 등 양형 가중 요소가 있어야 한다. 반대로 소극적으로 가담하거나 강요에 의해 수동적으로 뇌물을 공여했다면 양형 기준은 최대 3년으로 낮아진다.

하지만 뇌물공여죄 유죄 전제 하에 다른 혐의도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게 특검의 공소 내용이다. 뇌물이 아니라면 횡령도, 재산국외도피도, 범죄수익은닉도 적용하기 어렵다는 법리적 구조다. 한 대형 로펌 형사 전문 변호사는 “뇌물공여가 유죄로 나오면 다른 범죄도 줄줄이 유죄로 나올 가능성이 크고 반대로 무죄가 나오면 다른 범죄의 요건 자체가 흔들린다”며 “유죄더라도 주 혐의인 뇌물죄가 최대 징역 5년 이하인 만큼 10년 이상 선고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결국은 재판부가 간접 증거들을 어떻게 주관적으로 판단할지에 달렸다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한 판사 출신 변호사는 “구체적 내용이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은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비공개 독대 내용을 어떻게 판단할지가 핵심”이라고 말했다. 독대 내용 추론의 근거가 되는 ‘안종범 수첩’ ‘청와대 삼성 문건’ 등의 간접 증거들을 어떻게 판결문에 녹여낼지 법조계의 관심이 쏠린다.

고윤상 기자 k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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