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태호 기자 ] ‘연 22% 금리에 1500만원 대출 가능.’
김성준 렌딧 대표(사진)가 2014년 12월 국내 한 저축은행에서 받은 대출 견적이다. 그는 당시 미국에서 패션 이커머스(전자상거래)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을 운영하고 있었다. 사업 자금이 부족해져 한국 금융권에 개인신용대출을 의뢰해봤지만 쉽지 않았다. 오랜 기간 미국에서 생활한 탓에 국내 신용기록이 없어서다.
이자가 싼 1금융권 대출은 모두 거절당했다. 결국 저축은행 등 2금융권으로 눈을 돌렸으나 연 20%를 웃도는 고금리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1금융권과 2금융권 사이의 중금리 대출을 P2P(개인 간)금융 방식으로 풀어낸 ‘렌딧’이 탄생한 배경이다.
렌딧은 개인신용대출 분야 1위 P2P금융업체다. 시중은행을 이용하지 못해 2금융권의 고금리 대출에 노출되는 사람들에게 10% 초반 대출을 중개하고 있다. 대출을 해주는 사람도 개인이다. 이들은 렌딧을 통해 자금을 투자해 10% 초반의 이자수익을 얻을 수 있다.
투자는 ‘포트폴리오’ 방식으로 이뤄진다. 대출을 신청하면 렌딧만의 신용평가를 통해 금리 등을 확정하고, 다양한 개인대출 건을 묶어 투자자들이 위험을 자동으로 분산할 수 있게 했다. 지금까지 렌딧 대출자의 연체율은 0.3%, 부실률은 1.23%에 불과하다. 그동안 불모지였던 중금리 대출시장을 P2P와 정보기술(IT)로 시장에 정착시키고 있는 셈이다.
블루오션을 선점한 덕에 성장도 가파르다. 2015년 3월 설립된 렌딧의 누적대출액(투자액 동일)은 이달 처음으로 600억원(4200건)을 돌파했다. 올해 초 300억원 정도였던 점을 감안하면 성장에도 가속도가 붙고 있다. 투자 유치도 활발하다. 지금까지 알토스벤처스, 옐로우독 등 국내외 벤처캐피털(VC)로부터 173억5000만원을 투자받았다.
은행 대출 거절 이후 2년 반 만에 이 같은 성과를 낼 수 있던 것은 김 대표가 쌓아온 다양한 경험의 결과이기도 하다. KAIST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김 대표는 재학 당시 ‘1/2프로젝트’라는 캠페인을 기획했다. 우유 한 팩, 생수 한 병 등을 반으로 쪼개 같은 값에 판매하고 나머지 반은 자동으로 기부하는 캠페인이다. 기부 등 사회 문제에 대한 고민과 창업, 금융산업에 남다른 관심은 지금의 렌딧 모델이 탄생하는 밑거름이 됐다.
김 대표는 “개인신용대출 P2P 서비스가 급성장하고 있는 해외 시장을 참고하면서 확장 가능한 서비스를 꾸준히 발굴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호 기자 highkic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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