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 '제2 고향사업' 추진해 볼 만해
국중호 < 일본 요코하마시립대 교수·경제학 >
한국은 지역 불균형 문제, 특히 수도권 쏠림 현상이 심각한 수준이다. 쏠림 현상은 잘나갈 땐 ‘대박’을 가져오지만 잘못되면 ‘쪽박’을 찰 위험성이 있다. ‘한쪽이 독차지’하는 병폐가 불거지면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간 계층 분열로 이어지고 사회 분위기가 험악해진다.
일본도 ‘도쿄 일극(一極) 집중’이라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으나 한국에 비하면 훨씬 덜하다. 도쿄도(東京都) 인구(1360만 명)는 일본 전체 인구의 10분의 1 정도다(10.8%). 서울 인구(1023만 명)가 한국 전체 인구의 5분의 1을 차지하니 서울로의 인구 집중은 도쿄의 2배에 달한다. 정주성(定住性), 중견기업, 인재 공급 측면에서 일본의 지역경제가 한국보다 강한 이유를 짚어보자.
우선 정주성에 기반을 둔 지역문화의 관광자원 활용이다. 일본은 한 곳에 눌러앉아 살아가려는 정주성이 한국보다 꽤 강하다. 오래 지속된 무사정권 하에서 이동의 제한이 컸기 때문이다. 정주성은 새로운 변화의 적응에 발목을 잡기도 하지만 지역 고유의 전통문화를 남겨 볼거리 관광자원이 되기도 한다. 아베 정권 출범 전인 2011년 622만 명에 불과하던 외국 관광객이 2016년 2404만 명으로 최근 5년 사이에 4배 가까이(3.9배) 늘어났다. 일본의 지방을 찾는 외국 관광객이 많다는 것이 한국과 크게 다르다. 내국인들에겐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곳이 외국 관광객을 통해 알려지고 내국인이 그곳을 방문하는 식의 흥미로운 현상도 나타난다.
다음으로 지역산업이 한국에 비해 튼튼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일본엔 특성 있는 지역 자원을 활용해 난제를 극복해온 선진기업이 많이 포진해 있다. 니가타현(新潟縣) 나가오카대의 권오경 교수는 “선진기업이 모여 선진지역을 이루고, 선진지역이 모여 선진국을 이룬다”고 말한다(동아시아경제경영학회 연구회 발표). 나가오카시(市)만 하더라도 세계에서 통하는 석유채굴 굴착기계, 공작기계, 정보기술(IT) 장비 기업 등이 자리하고 있다. 인공지능, 바이오 분야 등 제4차 산업 운운하는 한국의 산업정책 중시를 나무랄 바는 아니다. 하지만 허리를 받쳐주는 선진기업이 육성되지 않은 상태에선 제4차 산업의 대박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마지막으로 일본은 지방으로도 우수한 인재가 많이 공급된다는 점이다. 인재 흡수 저변이 넓은 중견 선진기업의 노동 수요가 있다. 여기에 지방 회귀를 별반 꺼리지 않는 수도권 대학 출신자의 노동 공급이 노동 수요에 대응하고 있다. 한국이 지역 기반 선진기업을 육성하려 해도 일본처럼 되기는 어렵다. 인재를 수용할 선진기업이 지방에 많지 않을뿐더러 수도권 대학 출신자가 지방으로 내려가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정주성’ 지역문화가 약해 지방에 선진기업이 육성될 토양이 척박하다.
한국은 어떤 길을 찾아야 할까. 글로벌 시대에 국제화가 강조되듯이 이제 한국에선 고향과 타향 간의 ‘향제화(鄕際化)’를 추진해야 할 때다. ‘제2의 고향사업’이 지역경제에 도움될 것이다. 상경해 산업역군의 중추가 돼 왔던 베이비붐 세대가 몇 년 후면 대거 정년퇴직을 맞는다. 출신 고향으로 돌아가는 ‘U턴’, 서울에서 지방으로 내려가는 ‘I턴’, 출신 지역과는 다른 지역에 정착하는 ‘P턴’ 사업의 육성이다. 한국의 지역 활성화는 당신(U)이 돌아오고, 내(I)가 내려가고, 그들(彼·P)이 돌아오는 ‘UIP 향제화 사업’에 달려 있다는 느낌이다. 제2의 고향 조성 사업은 마음의 안식처 사업이기도 하다.
국중호 < 일본 요코하마시립대 교수·경제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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