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태의 논점과 관점] 통계, 그 위험한 수단

입력 2017-08-22 18:48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


지난 5월 한 신문에는 ‘지니계수에도 안 잡히는 소득 불평등…계층이동 사다리 사라졌기 때문’이란 제목의 글이 실렸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의 글이었다. 요지는 이렇다. “대표적 소득불평등 지수인 지니계수가 2009년 이후 다소 개선되거나 정체돼 있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도 낮아 한국의 소득 불평등이 심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또 다른 소득불평등 지표인 소득 10분위 배율은 2006년 이후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따라서 지니계수가 악화되지 않더라도 빈부 격차는 얼마든지 확대될 수 있으며 지니계수만으로는 소득 분배 상황을 적절히 포착할 수 없다.”

입맛 따라 180도 바뀌는 통계

얼핏 그럴듯해 보인다. 하지만 위 글의 필자는 한국에서 소득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는 것을 당연한 사실로 전제하고 있다. 지니계수 추이가 이런 생각과 다르자 10분위 배율을 찾아봤고, 거기에서는 불평등이 심화된 것으로 나왔으니 지니계수는 한계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반대로 소득불평등이 심화되지 않고 있다고 믿는 연구자를 가정해보자. 그는 소득 10분위 배율 추이가 자신의 생각과 다르자 지니계수를 찾아본 뒤 이렇게 결론지을 수 있다. “10분위 배율이 개선되지 않아도 지니계수에서 보듯이 빈부 격차는 얼마든지 축소될 수 있으며 10분위 배율만으로는 소득 분배 상황을 적절히 포착할 수 없다.”

위 글을 쓴 주인공은 지금은 새 정부의 통계청장이 된 황수경 씨다. 그는 통계, 특히 노동 관련 통계의 현실과 괴리 문제를 종종 제기해왔다고 한다. 자신이 수장이 된 통계청과 과거 종종 대립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실제 통계청은 지난 5월 황 청장 글에 대해 해명자료를 냈다. 그가 인용한 지니계수와 소득 10분위 배율 추이는 시장소득을 기준으로 산출한 것인데 OECD 등 국제 사회에서는 처분가능소득을 주로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처분가능소득을 기준으로 지니계수와 10분위 배율을 산출하면 두 가지 모두 2012년부터 지속적으로 개선되고 있다는 게 통계청의 설명이었다.

시장소득과 가처분소득 중 어느 것을 기준으로 해야 하는지 정답은 없다. 다만 가처분소득은 시장소득에서 세금 등을 빼고 실제 쓸 수 있는 돈이라는 점에서 좀 더 현실적 기준이라고 볼 수는 있다. 중요한 것은 어느 것을 기준으로 하느냐에 따라 소득불평등에 대한 평가가 완전히 달라진다는 점이다.

통계는 각종 사회 현상을 객관적 수치를 통해 보여주는 매우 유용한 지표다. 거의 모든 분야에서 필수적으로 쓰이는 이유다. 하지만 정작 통계의 생산과정이나 통계 숫자가 나타내는 정확한 의미를 아는 이는 많지 않다. 그래서 숫자가 갖는 막연한 신뢰성과 통계에 대한 대중의 무지를 교묘히 이용하려는 이들이 세상에는 넘쳐난다. 정치인들이 대표적이다. 지난 대선 때 후보들 간의 공방은 이를 너무도 잘 보여줬다.

통계청 정치적 중립, 가능할까

국가의 공식 통계를 생산하는 통계청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통계청이 어떤 통계를 어떻게 작성하고, 어떤 식으로 해석해 발표하느냐에 따라 똑같은 현상이 180도 다른 모습으로 국민들에게 비쳐진다. 정치적 중립성이 중요한 이유다. 그런 점에서 “정책 맞춤형 통계 개발을 통해 새 정부 정책의 실효성을 제고할 수 있도록 하겠다”던 황 청장의 취임사는 다소 걱정스럽다. 부디 새 통계청장이 보고 싶은 통계가 아닌,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객관적 통계 개발에 힘써주길 바란다.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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