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욱의 일본경제 워치] 국가의 화폐발행 독점권 붕괴되나…주목받는 일본의 '지역 가상화폐' 발행실험

입력 2017-08-23 07:29   수정 2017-08-23 07:32

노벨상을 수상했던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일찍이 ‘화폐발행 탈국유화론’을 주장했습니다. 국가가 지닌 화폐발행 독점권을 박탈하고 대신 민간에서 다양한 화폐를 발행하도록 하는 것이 인플레이션 억제와 안정적인 경제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수백년간 중앙은행에 의한 화폐발행 집중화가 진행된 결과, 화폐발행은 국가가 독점적으로 한다는 것이 자연스러워진 현대 세계에선 하이에크의 주장이 ‘시대착오적’ 구상으로 받아들여졌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 등장이 늘면서 화폐발행의 국가독점력이 현실에서 빠르게 약화되고 있는게 현실입니다. 최근 일본에선 한 술 더떠서 지역단위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가상화폐 발행이 빠르게 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니혼게이자이신문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지역별 가상전자화폐(지역제한 전자화폐) 발행이 잇따르고 있다고 합니다. 블록체인 기술은 일반 전자화폐 보다 시스템 설치비용이 저렴해서 화폐발행이 비교적 손쉬운 장점이 있다고 합니다.

기후현 다카야마시의 히다신용조합은 지역 음식점과 소매점에서 사용할 통화를 10월 하순 도입할 방침입니다. 신용조합 창구 등에서 1엔을 지역 가상화폐 1신용조합 코인으로 환전해 둔뒤 지역 매장에서 상품을 구입할 때 QR코드를 활용해 스마트폰 등으로 결제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최근 음식점 등 42개 점포와 신용조합원 250여명이 실증실험에 참여했다고 하네요. 현금사용이 주를 이루는 일본에선 결제 절차가 번거롭고, 현금이 없을 때에는 물건을 구매할 수가 없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각종 할인쿠폰과 잘만 결합하면 지역가상화폐가 현지 소비자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갈 것으로 신용조합측은 기대하고 있습니다. QR코드를 이용하기 때문에 가게 입장에서도 별도의 단말기를 구매할 필요가 없어 도입 비용이 거의 없다고 합니다. 대신 신용조합은 가게에서 받는 1%대 수수료를 수입 목표로 삼고 있다고 합니다.

긴테쓰그룹홀딩스도 9월부터 오사카에서 지역 가상화폐 실증실험을 실시한다고 합니다. 오사카 전망대와 백화점에서 약 5000명의 시민이 참여해 지역화폐 도입을 위한 첫단계를 밟을 예정입니다. 후쿠시마현에 있는 아이주대학도 올 3월에 학교내 화폐 실증실험을 교내 식당과 매점에서 실시햇다고 합니다. 연내 도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합니다. 시마네현 소재 산인고도은행도 지난해 11월에 자체 전자화폐 실증실험을 실시해 직원식당과 매점 등에서 이용의 편리성과 거래 안정성을 확인했다고 합니다.

일본의 새로운 화폐실험이 어떤 결과를 맺을지 주목하게 됩니다. 인류가 중세나 근세초 처럼 국가가 아니라 지역단위를 중심으로 다양한 화폐를 사용하는 세계로 복귀하게 되는 것일까요. 성공여부와 관계없이 가상화폐가 바꿔나가는 세계의 모습이 무척이나 흥미롭습니다.

도쿄=김동욱 특파원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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